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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Jan 22. 2018

비서와 문고리 권력의 경계

조선 리더십 경영

1. 대한민국을 덮친 비선 실세 및 문고리 권력 파동은 간단히 잘라서 말하면 본인의 역할을 잊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아무 직책도 없는 민간인이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하고, 비서들이 직접 권력을 휘둘렀기에 일어난 비극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비극은 이 사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무려 기원전 221년에 세워진 진나라는 기원전 206년 2대 황제 호해 때 멸망했다. 환관 조고는 궁궐의 수비를 담당하는 낭중령에 앉은 후 문고리 권력이 되어 황제가 된 호해를 가지고 놀았다. 


지록위마(指鹿爲馬), 황제 앞에다 사슴을 끌어다 놓고 조고가 말이라고 하자, 신하들이 조고의 위세가 무서워서 사슴을 말이라고 하고 황제도 이를 말이라도 인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비서 역할을 했어야 하는 환관이 비서는커녕 황제를 대놓고 조롱 한덕에 통일국가 진나라는 건국 15년 만에 멸망하는 수난을 겪었다.


이 외에도 특수정보기관을 구축해서 국가를 쥐고 흔든 명나라판 닉슨 위충현,  고려 의종 때 나라의 재산을 다 틀어쥐었던 백선연등은 그들이 본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즘에도 상사가 죽으라면 죽어야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출처 : https://goo.gl/812NwA]


2. 그들은 왜 자신의 본분을 벗어나서 폭주한 것일까? 여기에는 그들이 처한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환관이 태어난 이유는 '권력'에 있다. 궁궐 안에서 살 수 있는 남자는 임금과 세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궐의 모든 일을 여자만이 할 수는 없다. 남자의 힘이 필요했지만 궁궐에는 왕비, 후궁, 상궁, 궁녀 등 많은 여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성적인 잡음을 예방하면서 남자의 힘을 쓰기 위해 환관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신체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대신, 권력의 중추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3. 하지만 환관들은 권력의 중추에 가까이 있으면서 천대받았다. 얼핏 생각하면 권력에 가까우니 힘이 막강할 것 같은데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대신들은 그들을 무시했다. 환관들은 원래부터 좋은 출신들이 아녔는 데다가 거세를 당했기 때문에 남자의 본분을 못한다는 인식이 깔렸기 때문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부모님이 주신 신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람이 유교사회에서 당하는 취급은 가혹했다.  


하지만 당연히 이런 이유만으로 환관을 무시한 건 아니다. 그 뒷배경에는 정치적 의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내시부를 관장하는 내시부사 즉 '상선'은 초기에는 정 2품이었고 나중에 강등된 후에도 종 2품의 직위였다. 한때는 사간원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막강한 권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 2품이라고 절대 낮은 위치가 아니다.


오늘날 정치가끼리 이권 투구를 할 때 상대방의 결함을 들먹이는 경우가 있다. 성별, 인종, 출신, 과거를 내민다. 이게 생각 외로 잘 먹힌다. 사람이란 의외로 자신의 결점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움츠리거나 위축되어서 상대방에게 반격의 기회를 주고 만다. 

대신들은 환관의 신체적 결핍을 지적함으로써
정치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한 것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유교사회에서 환관이라는 것은 환관에게 치욕을 주기도, 환관이 아닌 사람이 서로 뭉치게 하는데도 최적의 카드였을 것이다.


4. 대신들은 이렇듯 환관을 제어하고자 여러 가지 수단을 다 썼다. 반드시 나쁜 의도라고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역사상 환관이 국정을 농단한 사례는 수두룩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들의 힘과 권력이 실제로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고나 십상시의 권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기도 했었다. 


왜 그들의 힘이 강했나?

'보스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권력적 위치에 비해선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수행, 일정관리, 서무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보스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환관들은 왕을 비롯한 왕족들의 바로 옆에서 그들을 받들었다. 특히 최고위 치인 '상선'은 임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 여러 임금을 섬기면서 얻은 지식, 오랜 기간 왕가를 모시며 쌓은 정은 그들을 왕이 믿을 수 있는 참모로 만든다. 이렇게 그들은 왕의 권력 안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는다. 


5. 당연히 대신들은 이 환관들을 견제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실록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환관'의 이름이다. 원래 비서이기 때문에 직접 나설 일이 없었기도 하지만 실록을 작성하는 사관들이 그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의도적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뭐냐고? 실록 내내 잘한 것은 찾기 힘들고 잘못한 것이 더 많이 나오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실록에서 환관이 드러난 경우는 극히 적다. 우선 안 좋은 예로는 명종을 들 수 있다. 상선 박간은 사치로, 상선 남세경은 왕에게조차 불경스러운 행동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왕이 어정쩡해서 그런지 환관들의 월권이 유독 심한 사례였다. 


전균과 엄자치는 조금 복잡한 이력의 소유자다. 전균은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섬겨서 종 1품 숭록대부에 하음 군이라는 군호까지 받았지만 세조의 찬탈 과정에서 세조에게 정보를 몰래 흘린 첩자였기에 오늘날에는 좋은 눈으로 보기 힘들다. 엄자치는 계유정난에 참여해서 수양대군(세조)의 눈에 들어 출세했지만 이후 세조의 형제이자 권력싸움의 대상인 금성대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었다.


충신은 거의 한 명 수준이다. 김처선, 연산군에게 죽은 상선이다. '연려실기술'의 기록에 의하면 연산군의 폭정이 도를 넘자 이를 면전에서 간했고 분노한 연산군이 직접 그의 팔다리를 잘라냈다는 실록의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연산군은 김처선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고 부모의 무덤을 뭉개버렸으며 심지어 김처선의 이름에 들어가는 '처(處)'를 쓰지 못하게 했다. 참고로 저 글자가 '장소'를 뜻하는 한자임을 감안하면 글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는 눈에 선하리라. 


오늘날에도 비서의 역할은 중요하다 [출처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6. 이런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권력의 가까이서 일하는 사람이 잘 나간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높은 사람과 24시간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 해서웨이는 메릴 스트립에 사적인 요구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메릴 스트립의 곁을 떠나게 되지만 그녀의 능력을 가장 잘 이해해준 것 또한 메릴 스트립이었다. 결국 메릴 스트립의 추천으로 그녀는 새 직장을 얻는다. 


둘째는 그들의 권력이 생각 외로 막강하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개중에 대놓고 바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비서를 막 대하는 사람들이다. 이 비서는 권력자의 옆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막대하면 어떻게 되는가? 한 예로 일부러 권력자의 기분이 안 좋을 때를 약속시간으로 잡아준다. 사장 비서가 어리거나 계약직이라고 막대하면 사장 비서는 일부러 사장의 심기가 안 좋을 때 약속을 잡아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어지간한 카드가 없는 한 사장에게 욕을 먹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절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셋째는 권력의 균형에 대한 관점이다. 위의 비서의 경우 저 정도 월권은 해도 좋다고 보지만 만약 저 비서가 나쁜 마음을 품고 자기에게 혜택을 주는 사람에게만 사장과 대면할 때 잘해준다고 하면 그 회사는 망한다. 실제로 사장과 부하 간의 소통이 막혔을 때 회사가 망한다. 


문고리 권력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각부처 장관들, 여당의 대표조차 그들을 통하지 않으면 대통령과 통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고이래 무수한 문고리 권력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이름에 올랐을 때는 한결같이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였다. 후한 말 십상시가 나타나서 황제를 조종했고, 조선말 안동 김씨가 왕을 제어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문고리 권력이 그 뒤를 이었다.


7. 그래서 조직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비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역할이 조금만 잘못 벗어나면 조직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메일 : ins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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