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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Jan 31. 2018

스펙 좋다고 일을 다 잘하나?

조선 리더십 경영

1. 조선 선조대 인재 황금기인 목릉성세(穆陵盛世)는 노력과 우연의 산물이었다. 태조 집권 때 벼슬을 떠난 일가, 세조 집권 때 벼슬을 떠난 사람들 그리고 중종반정,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관직을 벗어난 사람들이 벼슬의 뜻을 갖거나 사면되었고, 선조는 인재의 중요성을 잘 알았기에 이들을 열심히 맞아들였다. 


덕분에 성혼, 이이, 이항복, 허준, 이순신, 이원익 등 조선사를 수놓는 Top 클래스 인재들이 선조 정권으로 몰려갔다. 그런데 보통 좋은 인재가 몰려갔으면 잘 풀려야 하는데 선조대는 조선 3대 난세 중 하나로 꼽히며, 그래도 체면치레는 하던 조선경제가 내리막길로 치닫은 시기이기도 했다.


2. 표면적인 이유는 임진왜란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한 전란을 겪어도 리더가 뛰어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선조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겠다. 선조의 놀라운 리더십은 일본군이 명나라와 동맹을 맺고 조선땅을 짓밟아도 아무짓도 못하게 했고, 멀쩡한 조선수군을 칠천량에 가라앉히는 단초도 제공했다.


그런데 이런 바보짓만 골라서 한 것 치고는 선조의 능력은 굉장히 뛰어났다. 정치적인 역량도 있었고 학자로서도 뛰어났다. 


문제는 이걸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신하들끼리 견제하는 구도를 만들었고, 신하들은 바보같이 여기에 걸려들어서 동인, 서인으로 갈라져서 서로 피 튀기게 싸웠다.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로 피난을 갈 수 없자 청병하는 건 좋은데, 이 명나라가 일본하고 합작해서 조선을 짓밟는 건 못 본척했다. 자기가 불러온 명나라는 무조건 잘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후에는 약해진 왕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죄과를 신하들에게 던지고, 아들인 광해군을 압박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 사람이 일을 잘할 보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3. 서애 류성룡은 이런 선조의 '작태'에 직접적으로 휘말린 피해자다. 선조가 명나라 병사를 끌어들이자 그는 평안도 도제찰사라는 직함을 맡아서 이들의 보급을 수행해야 했다. 국토의 요지가 적에게 점령당하고 불타버린 상황에서 보급을 원활히 수행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류성룡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남자, 실록에 의하면 보급에 차질이 없었다고 하니 그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공적을 바탕으로 영의정으로 임명된 그는 수석 재상이 되어 전란에 휘말린 조선 조정을 이끌었다. 서인의 윤두수와 협력해서 파벌로 갈라진 조정을 합쳤으며 제도를 개편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그리고 그 인재들이 조선을 위기에서 구했다.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출처 : 태양의 후예]

하지만 류성룡은 노량해전이 끝난 직후, 북인계 세력으로 인해 탄핵을 당한다. 류성룡이 임금의 명을 거역했으며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조는 이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4. 선조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같이 일할만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선조라는 사람의 마인드로 볼 때 류성룡은 자신이 살기 위해 버려야 할 카드였다.


전란이 일어났을 때는 파벌끼리 힘을 합쳐서 국난을 극복하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전란이 끝나자 선조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신하들은 합심해서 '이제 그만 광해군에게 넘겨라'라고 대놓고 압박했고 왕 자리를 절대 내놓고 싶지 않은 선조는 힘든 나날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는 신하들을 분열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류성룡 탄핵은 안성맞춤의 사건이었다. 필연적으로 류성룡을 보호하려는 세력, 탄핵하려는 세력으로 나뉘고 자기가 저지른 실책은 류성룡에게 덮어씌울 수 있다. 실제로 선조는


내가 이런 재앙이 일어날 줄 알았거늘 경들은 아무 대비책도 전달하지 않았다

왜적이 쳐들어 왔음에도 류성룡은 체찰사의 명을 받고도 가지 않았다


면서  지속적으로 류성룡에게 떠넘기기 프레임을 짜고 있었다. 이게 프레임이라고 하는 이유는 체찰사로 임명되고서 안 간 이유가 선조가 놔주질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운 나쁜 직장인들은 상사가 하지 말라는 일을 안 했는데 그게 정말 중요한 일로 부각되는 바람에 상사로부터 욕먹는 경우가 있다. 이걸 생각하면 딱이다. 


결국 전후 조선을 재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 시스템을 완성하고 실행하던 류성룡은 선조의 알량한 밥그릇 지키기에 휘말려서 물러나고 만다. 선조는 스스로 물러나는 류성룡을 잡고선, 말로는 그대 책임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위와 같이 지속적으로 자기 잘못을 신하들에게 뿌렸고, 류성룡을 공격하는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결국 류성룡은 파직되어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이후 관직이 회복되었음에도 다시는 조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5. 각종 기록을 보면 선조는 못하는 게 없는 임금이다. 학식도 풍부했고 정치력도 뛰어났고 글도 잘 썼다. 


하지만 그 유능한 능력을 자신의 의무에 쓰지 않고 자기 보신에만 썼다


자기 왕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전쟁이 끝나자 당파싸움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명나라에게 보고할 정도로 리더로서의 책임의식도 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적자를 세자로 삼겠다고 아들들이 18살이 넘도록 세자도 임명 안 하더니, 마지못해 임명된 세자는 적자가 태어나자 온갖 정치적 압박을 줘서 콤플렉스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역사는 능력 있는 사람이 일 잘하는 건 아니라고 역설한다. 


반면 류성룡은 능력 있다고 출세한다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케이스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사람과 사회가 받쳐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조선에서 손꼽히는 5대 재상 중에서 아무 잘못도 안 하고 파직된 유일한 인물이 류성룡이라면 말 다했을까?



류성룡같이 안 되려면


1. 빨리 대안을 찾아라

이는 비단 직장에서만 통용하는 법칙이 아니다. 학생은 물론 프리랜서 심지어 가족관계에서조차 통하는 법칙이다. 선조처럼 단물만 빨아먹고 쏙 버리고, 온갖 잘못만 덮어씌워서 책임질 일만 던져주는 사람과는 오래 안 엮이는 것이 좋다. 


적어도 인생에서 잘 살기 위한 최저한의 자세는 상대방과 잘 해보려고 하는 마음, 상대방이 잘 되도록 돕는 마음이다. 이를 원수로 갚는 사람한테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저자는 선조 같은 사람한테 걸려서 고생한 적도 있고, 이순신 제독 같은 사람을 만나서 많이 성장한 경험도 있다. 결국 혼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법칙을 상기해보면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은 인생에서 중요하다. 정말로.


2. 버티면서 활로를 찾아라

그렇다고 너 이놈 김이사, 나를 이용만 해 먹어?라고 받아치는 것 또한 좋지 않다(전국의 죄 없는 김이사 님들께는 죄송). 


만약 당신의 상사가 선조라면, 다른 분야가 없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갈아탈 생각을 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워 라벨이 중요한 시대에 저런 사람의 영달을 위해서 정신건강을 희생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타 부서와 잘 지내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이 일어날 때 갈아타기 편하고 꼭 위기가 없어도 더 좋은 부서나 포지션으로 옮겨 타기 편하다.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선조같은 관리자가 조직을 망치는 것을 막으려면


3. 제발 좀 걸러라

만약 자기 밑의 중간관리자가 선조같이 굴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거르는 게 낫다. 보통 성과를 잘 올리는데도 평판이 안 좋은 상사들은 잘못을 부하직원에게 돌아가면서 뿌리거나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마음가짐으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을 수 있는데 우선 본인의 조직이 업계 최고의 대안이 아닌 이상, 인재를 빼앗길 우려가 있고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불합리에 강하게 반발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것이 조기퇴사, 능률 저하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훈련된 인재가 기업의 경쟁력으로 각광받는 지금, 생산성을 저하하는 인재는 걸러내거나 재교육시키는 방안이 있다. 물론 성과는 물어다 주니 이쁘기야 하겠지만 선조같이 조직은 알바 아니고 나 사는 게 급한 사람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메일 : ins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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