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스스로의 길에 서있나?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무언가가 있는가?
이는 보이지 않는 미래에 불안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포기하지 않고 걸어나가기 위한 각오이기도 하다.
작년 2015년 4월. 미국 서부 가장 아래의 멕시코 국경에서 가장 위의 캐나다 국경까지 약 4300km를 걸었다. PCT, Pacific Crest Trail. 그 길 위에서 '히맨'이라는 이름으로 175일을 먹고 자며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바라볼 수 있었다.
하이커트래쉬(Hiker trash).
하이커트래쉬. 홈리스와 다를 것 없는 PCT하이커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PCT하이커들은 길게는 6개월 동안 텐트 생활을 한다. 한 벌의 옷으로 씻지도 못 하고 매일 30~40km를 걷다 보면, 아무리 먹어도 항상 허기지며 걷다가 눕는 곳이 곧 잠자리다. 하지만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하이커트래쉬인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깔끔한 차림의 관광객들이 많은 어떠한 마을이나 도시에서도 당당하다. 그 어떤 부끄러움도 찾을 수 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이런 '하이커트래쉬'를 특별하게 대우한다. 맛난 음식을 얻어먹기도 하고, 때로는 집에 초대를 받아 따뜻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는 '트레일 매직'도 경험하게 된다. 당신은 이런 거지꼴의 외국인 여행자를 집에 들일 수 있겠는가? 나도 선뜻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가 무얼까?
'지금 나는 스스로의 길 위에 서 있나?'
자신만의 길 위에 있는 사람은 떳떳하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나는 떳떳하다. 스스로를 내 던진 열악한 환경에서 사서 고생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 한 번도 한 눈 팔지 않았다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거지 꼴로 더러운 손으로 먹을 것을 입에 우겨넣으며, 첫 번째 목표인 완주를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지금, 두 번째 목표인 PCT기록만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PCT라는 길의 마침표를 완벽하게 찍고 싶어서. 스스로 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만만치가 않다. '이제 뭐 해 먹고 살지?'하는 불안함도 뒤따른다. 그러다가도 길에 나앉을지언정 가슴 뛰는 무언가를 위해 한 발이라도 내딛겠다는 각오로 끝을 맺는다. 적어도 지금은 안식처를 잃는 것보다 스스로를 잃는 것이 두렵기에.
4300km의 그 길은 분명 길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길에 비하면 잠깐의 '산책' 쯤이나 될까? 앞으로 수많은 갈래의 길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래도 그 '산책'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막다른 길처럼 보여도 가보면 분명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길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절뚝이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길이 열려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대로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길에 올리고 있다. 꼭 이 실험에 성공해 증명해 보이고 싶다.
맨발의 PCT하이커를 만났다.
신발을 신지 않고 PCT를 걷는 맨발의 하이커를 만난 적이 있다. 이미 900km 이상을 맨발로 걸었다는 그에게, 한 걸음 한 걸음은 얼마나 신중하며 또 소중했을까? 그에 반에 나는 신발의 보호를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는 않았나 반성한다.
지금 나는 맨발이다. 신발을 구할 수 없다면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디뎌 보자. 두렵지만 내딛기도 전에 포기는 말자.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분명 더욱 단단해진, 신발이라는 껍데기가 필요없는 온전히 나를 지탱해줄 발이 보일 것이다.
길을 잃어도 좋다. 어떤 길에서도 버텨낼, 내 의지대로 걸어갈 발이 있다면.
20160215
by 히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