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주하고 싶어질 때가 떠날 때이다.

내일 당장 떠나지 않으면 왠지 평생 누워있을 것만 같다.

by 히맨

드디어 호텔 조식이다. 벽면의 테이블에는 히맨이 좋아하는 빵과 우유가 깔려있다. 메인 메뉴 하나를 골라 주문하고서는 일어나더니 최대한 많은 종류의 빵을 골고루 담는다.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형이 먼저 방에 들어간 후에도 히맨은 느긋하고 여유롭게 마지막 후식을 즐긴다.

GOPR9287.JPG
GOPR9284.JPG


오늘은 해야할 일이 좀 있다. 호텔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체국을 찾아 재보급 상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부족한 행동식을 조금 더 사야하는 일이 있다. 둘은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갈 생각인 모양이다. 특히 형은 정말 자전거가 타고 싶은 것 같다. 호텔 근처 자전거 대여소의 비용은 생각보다 저렴하지는 않다. 이왕 타는 거면 처음 타보는 걸 타겠다는 히맨이 휠이 두꺼운 산악용 자전거를 고른다. 호텔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서 잠시 방에 들러 각자 필요한 짐을 가지고 나온다. 히맨은 여권과 지갑 등을 초록색 드라이색에 담아 들고 나왔다. 드라이색은 아이딜 와일드(Idyllwild)에서부터 쉴 때면 참 유용한 핸드백이 되어준다.

히맨은 멋진 영상을 기대하며 자전거 핸들에 고프로를 달고서 자전거에 오른다. 핸들링이 좀 익숙지 않은지 살짝 비틀댄다.

GOPR9291.JPG

먼저 향한 곳은 근처 대형 스포츠 용품 가게. 형은 정수 필터를 포함해 몇 가지 장비들을 계산대에 올린다. 생소한 디자인의 러닝화들을 구경하던 히맨은 양말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 켤레를 집어든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보니 누가 집어가지는 않을까 걱정되던 자전거는 그자리에 잘 있다. 다시 출발.

GOPR9293.JPG

우체국까지의 거리는 꽤 되는 듯 둘은 계속해서 페달을 밟으며 도로를 따라 달려나간다. 도로 위의 차들은 자전거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뒤에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오는 차들은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형은 뒤도 안돌아보고 열심히 달려나간다. 점점 벌어지는 거리를 좁히려 속도를 올리는데 높아지는 속도만큼 불안감도 커진다. 바짝 긴장한듯 눈이 커진 히맨은 바닥의 작은 돌맹이들도 신경쓰인다. 상상하기 시작한다. 만약 잠깐이라도 핸들이 틀어져 이탈하거나 넘어진다면...

'이러다 여기서 차에 치이면 되게 억울할 것 같아.'

핸들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페달을 밟는 무릎에도 힘이 더욱 실린다. 한 쪽 무릎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진다. 히맨은 불쑥 걱정이 된다.

'걷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자전거 때문에 걷는데 문제가 생기면 억울할 것 같아.'

"형 여기 아니에요? 이쪽인거 같은데?"

우체국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간만에 쉬는 날인데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슬슬 짜증이 나는 히맨이다. 자전거 핸들에 걸린, 마트에서 산 각종 행동식으로 가득한 커다란 봉지는 부스럭 소리를 내며 쉴 새 없이 좌우로 움직인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걸리적 거리는 봉지도 히맨의 신경을 쓰이게 한다.

'쉬는 날에도 정신없이 바쁘네... 좀 느긋하게 누워서 기록정리하고 싶은데...'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겨우 찾은 우체국에서도 히맨은 바쁘다. 재보급만 찾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남는 식량과 불필요한 물품들을 또 어디론가 보낼 준비를 한다. 나침반을 비롯해 쓸데없이 무게만 차지하는 짐들을 뮤어 랜치(Muir Trail Ranch)로 보낸다. 아이패드에서 엑셀로 정리된 재보급지 주소 중 뮤어 랜치의 주소를 찾아 라벨에 적는다. 혹여나 주소가 틀릴까 한 단어를 쓸 때마다 확인하는 히맨의 고개가 좌우로 정신없이 움직인다.

엄청난 과제를 끝낸 듯한 홀가분 한 표정의 히맨은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가보다. 푸른 하늘의 구름들은 예뻤고, 나무로 만들어진 곰들은 귀여워 계속 눈길이 간다. 그렇게 무사히 돌아왔다. 자전거를 반납하면서 아저씨가 건낸 립밤이 가득 담긴 통에서 보라색 립밤 하나를 선물로 받아 주머니에 넣고 다시 방에 들어왔다. 둘은 하루하루 먹을 행동식을 대충 계산하며 침대에 늘어놓는다. 형이 먼저 열맞춰 침대에 누워있는 행동식들을 아이폰으로 찍더니 이내 히맨도 따라 찍는다. 쓸데없는 포장을 최대한 벗기고 차곡차곡 식량 주머니에 넣는다. 아까 산 양말도 한번 신어본다. 쉬는 날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내일이면 다시 길 위의 거지로 돌아간다. 무언가 좀 아쉬운 생각이 드는 히맨.

침대에 푹 파묻혀 있고 싶지만 다시 떠나야 한다. 내일 당장 떠나지 않으면 왠지 평생 누워있을 것만 같다. 아까 호텔 조식을 먹던 히맨이 카톡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스스로 만족한 듯 되새기던 그말 처럼.


'안주하고 싶어질 때가 떠날 때이다.'


20150504#19_Best Western Big Bear Chateau

by 히맨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