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일 이동하는 산속 1평짜리 허니문 빌라(?)

하이커 에세이 2 : 박준식&손지윤

by 히맨
▲ 하이 시에라(High Sierra)에서 웨딩드레스 입고 아름다운 호수 앞에서 찍은 허니문 사진 ⓒ 박준식


'하와이 가서 풀 빌라 리조트나 빌려 와인이나 마실 걸, 내가 미쳤지.'

미국 서부 종단 4300km 트레일, 피시티(Pacific Crest Trail)를 걷기 시작한 지 145일째다. 캘리포니아주를 출발해 오리건주를 지나 북부인 워싱턴주에 들어섰다. 캘리포니아주가 사막과 강한 바람이 특징이라면 오리건주는 크고 작은 활엽수가 펼쳐진 부드러운 여성 같은 곳이다. 그에 비해 워싱턴주는 굵고 키 큰 아름드리나무에 눈과 비가 자주 내려 영화 <쥬라기 공원>을 연상시킨다.

적응도 됐을 법한데 매일 밤 다리 근육이 조여 잠을 통 못 잔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매일 걷고 걸어도 목적지는 끝이 없다. 반복되는 지루한 풍경에다, 비나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짜증은 극에 달한다. '도대체 왜 온 거지' 혼자 투덜거리며 걷는다. 산은 골탕이라도 먹으라는 듯 한층 더 심한 오르막을 선사한다. 이런 비현실적인 고난은 상상 안에 없었다.

"또 시작이네."

반려자 앤지가 나를 향해 푸념한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었다. 앤지는 스윙댄스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닉네임이 앤지였다. 프랑스어로 천사를 뜻하는 '안젤라', 줄여 앤지라 불렀다. 피시티에서는 서로 '트레일 네임(Trail name)'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른다. 제2의 자아다. 내 트레일 네임은 고로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속 주인공 이름이다.


▲ 쥬라기 공원 / 워싱턴쪽 숲은 고사리과 식물이 많아 더욱 신비함을 자아낸다.ⓒ 박준식



사찰 주지 스님 로비해 얻은 결혼 승낙


피시티를 떠나기 한 달 전인 2018년 3월 11일 우리는 결혼을 했다. 아내와 5년 간 연애를 했지만 내가 중소기업을 다니는 등 변변치 않은 조건 때문인지 아버님은 결혼을 쉽게 승낙을 하지 않으셨다.
아버님이 다니는 한 사찰에 몰래 찾아가 주지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천도제를 지내기도 했다. 노력의 결과였을까. 아버님이 나를 한번 보고자 하셨다. 서울의 한 카페. 아버님이 처음 건넨 말이 잊히지 않는다.

"결혼하려니 참 힘들지?"

피시티 여행은 아버님의 결혼 승낙 전 이미 아내와 약속한 일이었다. 아내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홍콩 란타우 트레킹을 다녀오는 등 걷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악산을 오른 뒤 뒤풀이 자리에서도, 햇살 따스한 날 연남동 커피숍에 앉아서도 종종 이야깃거리로 피시티가 올라왔다.

그리고, 피시티를 주제로 한 영화 <와일드>(Wild)를 보고 결행을 각오했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의 탐험 정신이 놀라워서가 아니다. 더위, 눈사태, 심지어 성희롱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앤지를 혼자 두게 할 수 없었다.



한인 하이커의 돌연사, 팀 코리아 결성


2018년 4월 11일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피시티 관련 책과 유튜브를 보며 연구했지만 완벽히 준비할 수 없었다. 필요한 물건은 겨울 상품이라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장비가 많았다. 텐트랑 침낭 정도만 챙겨가고 나머지는 현지에 가서 사기로 하고 출발했다.

샌디에이고에 도착해 피시티 엔젤 '스카우트 앤 프로도' 집에서 2박 3일을 묵었다. 피시티에는 자원봉사자인 '피시티 엔젤(PCT Angel)'이 활동한다. 텐트를 칠 수 있도록 집 마당을 내놓기도 하고, 밥도 해주기도 하며 히치하이킹도 무료로 해준다. LA에서는 한인 피시티 엔젤도 있다.

스카우트 앤 프로도 집에서는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야 하지만 주인장은 우리가 신혼부부라는 것을 알고 침대 방을 내주었다. 허니문 특혜였다. 변호사였던 스카우트는 피시티 협회(PCT Association) 임원으로 10년을 일한 뒤 은퇴 후 피시티 엔젤로 활동하고 있다. 피시티를 출발하는 하이커들에게 하이킹 중 주의사항과 규칙을 알려준다. 매일 아침 피시티 출발지점인 멕시코 국경지대 캠포까지 차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두 번째 날 아침이었다. 며칠 전 출발했던 한인 하이커 4명이 집으로 돌아왔다. 운행 중 한인 하이커가 돌연사 해 뒷수습을 위해 온 것이었다. 다들 쇼크가 와 멍한 모습이었다. 같은 날 오후 3시에는 한인 여자 하이커 3명이 하이킹 도중 복귀했다. 그 중 2명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지만 장비가 허술해 되돌아왔던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들과 함께 아웃도어 가게에 가 장비를 하나 하나 골라줬다. 이 인연으로 우리는 트레일을 함께 걸었다. 훗날 외국인 하이커들은 우리를 '팀 코리아'라 불렀다.

▲ Team Korea 소중한 인연 ⓒ 박준식


초코바냐 육포냐, 그것이 문제로다


아내와 장거리 하이킹은 수월하지는 않았다. 먼저 하루에 얼마만큼 걸을 것이냐 조율을 해야 했다. 한 번은 사막 구간을 걷는데 발이 너무 뜨거웠다. 나는 몇 km만 더 걷고 텐트를 치자고 말했다. 하지만 체력 좋은 아내는 더 가자고 했다.

"왜 너만 생각해! 나는 네가 아프다면 멈췄잖아!"

아차. 감정이 격해지다 결국 짜증을 냈다. 서로 말 안 하고 삐쳐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원래 목적지까지 걸어갔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고는 좁은 텐트에 누워 굿 나잇 키스를 하며 화해를 했다.

먹는 것 때문에 많이 싸웠다. 굶주려 있다 서로 입에 들어가 있는 음식을 뺏어 먹기도 했다. 몰래 상대방의 물을 훔쳐 마셨다. 아내는 장난이었다고 했지만, 과연 장난이었을까?
다음은 '왜 안 먹냐'로 다퉜다. 나는 술을 좋아해 하루 한 번 폭식하는 습관이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피시티에서는 3시간 단위로 쪼개 먹어야 버틸 수 있다. 나도 피시티를 걷기 전 음식을 나눠 먹겠다고 아내와 약속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음식도 달랐다. 아내가 초콜릿바를 좋아한다면 나는 육포를 좋아했다. 한번 마을에 나가면 5~6일치 식량을 사서 배낭에 넣고 다녀야 한다. 그 때문에 상품의 무게와 칼로리, 유통기한을 따져 식량을 사야 한다. 무엇을 고르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독백보다 더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

▲ 아 덥고 지친다 / 걷다 지쳐 텐트 안에 누워버린 신혼부부 ⓒ 박준식



매일 이동하는 산속 1평짜리 신혼집


부부 하이커로서 즐거운 일도 많다. 일과를 마치고 텐트를 칠 때 일사불란하게 역할을 나눠 움직일 수 있었다. 내가 텐트 칠 자리를 정하고 주변 나무와 돌을 옮겨 주변을 정리하면 아내는 텐트 내 짐 정리를 하고 음식에 쓸 물을 끓였다. 처음에는 텐트 치는 법도 잘 몰랐지만 분업 덕분에 모든 일에 속도가 빨라졌다. 나중에는 밥을 먹고 같이 누워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짐도 나눠질 수 있어 좋았다.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위안이다. 다리가 아파 잠을 못 잘 때면 아내는 말없이 다가와 진통제를 건네줬다. 그래도 아파 뒤척이면 멘소래담을 발라줬다. 잠이 스르륵 왔다. 중간에 잠을 깨도 아내 손을 잡으면 기적같이 잠이 왔다. 아내가 비닐 베개에 바람을 불어넣어 주는 것도 고마웠다. 야생 속 작은 텐트는 우리의 신혼방이었다.


"너희들 진짜 미쳤구나. 그런데, 나도 같이 찍어도 돼?"


▲ 좁지만 행복한 신혼집 텐트안 신혼집이 때로는 좁게도 느껴지지만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 박준식


운행 84일째, 나는 누더기가 된 등산 바지를 입고 구린내 나는 청록색 긴 팔 남방 위에 나비넥타이를 맸다. 수염은 얼굴을 덮어 설인 같았다. 아내는 얼굴이 새카맣게 타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아내는 목적지에 미리 소포로 보냈던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캘리포니아 북부 시에라 시티(Sierra City)의 우체국 앞에서 웨딩사진을 찍었다. '그지 같은 꼴'로 웨딩사진을 찍고 있으니, '난 역시 도라이야', 웃음이 피식 났다.


▲ 오리건주와 워싱턴주를 잇는 '신들의 다리'. 지나가는 하이커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박준식


우리는 경치가 좋다는 곳에 미리 웨딩드레스와 나비넥타이를 소포로 보내 사진을 찍었다. 수염은 설인을 넘어 산타클로스가 돼 갔다.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도 수염에 가려 잘 보이지가 않았다. 옷도 신발도 색이 바라고 너덜너덜해졌다. 아내 얼굴에는 주근깨가 늘어간다. 등산화에 웨딩드레스. 듣도 보도 못한 언밸런스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은근히 꿀조합이었다. 다크초콜릿에 고춧가루, 딸기에 발사믹 소스 같은 것이랄까.

웨딩드레스는 갈수록 지저분해져 갔다. 박스에 넣어 다음 목적지로 보내거나 직접 배낭에 넣어 다니다보니 얼룩이 생겼다. 한 번은 라면스프가 웨딩드레스에 범벅이 됐다. 아내가 드레스를 입고 돌아다니면 어디에 있는지 냄새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때로는 라면스프 냄새가 내 몸 악취를 덮어줘 고맙기도 했다.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다른 하이커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가와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물론 누구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됐다. 하이커들은 우리를 "크레이지 커플"이라고 불렀다.

▲ 아내가 웨딩드레스를 어렵게 갈아입고 있다. 행인(왼쪽)이 신기한듯 쳐다본다.ⓒ 박준식



야생에서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까지


신혼 부부라는 '특이사항' 때문에 하이커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한 번은 캘리포니아 중부의 시에라를 걷던 중,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를 보기 위해 마을로 나가기로 했다. 마침 우리 이야기를 들은, 영화배우 톰 크루즈를 닮은 60대 하이커 에릭이 차를 렌트했다며 요세미티 국립공원(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북부 캘리포니아의 숲)에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는 좋다 싶어 차에 올라탔다.


에릭은 62살이었다. 미국 3대 트레일이라 불리는 피시티, 애팔래치아 트레일(AT, 미 동부), 콘티넨탈 디바이드 트레일(CDT, 북미 중서부 최장 트레일)을 모두 걸은 '트리플 크라운' 하이커였다. 미국 유명 등산용품 매장인 알이아이(REI)에서 24년간 일한 산악 전문가이자 프리랜서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연도별, 장소별로 정리한 풍경 사진이 가득했다.

그의 옛 이야기. 에릭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고 있던 때였다. 그날은 유난히 춥고 식량도 떨어져 생고생을 한 날이었다고 한다. 가까운 마을로 가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에게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상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암이 재발해 투병 중이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트레일 위에서 어머니와 간간히 연락을 했지만 소식도 없이 돌아가실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까봐 병이 악화하고 있는 것을 숨겼던 것이다. 어머니 사망 소식을 뒤늦게 들은 에릭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고향이 아닌 트레일로 복귀했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에릭과 함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압도적인 곳이었다. 거대한 바위산 꼭대기에는 부드러우며 묘한 무늬가 그려 있고 수 만년 전 빙하가 있던 흔적이 거친 바위에 남아 있었다. 봉긋 솟은 바위산 사방에는 숲이 펼쳐 있다.

우리는 차를 타 다시 유명 관광지인 데스벨리 국립공원에 갔다. 이어 '거지꼴'로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10달러짜리 옷을 사입고 휘황찬란한 밤거리를 활보했다.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있자니 정말 신혼여행을 온 기분이 들었다.


▲ 지나가는 트럭을 붙잡아 타고 마을로 향하고 있다.ⓒ 박준식



눈앞에 나타나 성큼성큼 다가오는 흑곰


워싱턴주 레이니 패스(Rainy Pass)를 5km쯤 남겨둔 구간이었다. 아내와 나는 항상 2~3m 정도 거리를 두고 앞뒤로 걷는다. 그날은 아내가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목석처럼 갑자기 멈춰 섰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다가갔다. 아내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검은 나무토막이 놓여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광경이었다.

"자기야 곰!"

그런데,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무토막인 줄 알았던 것은 키가 3m쯤 돼 보이는 흑곰이었다. 바로 4~5m 앞에서 우뚝 서 있었다. 곰은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 심장 박동수는 더 쿵쾅쿵쾅 뛰었다. 아, 여기서 끝인가.
나는 아내를 뒤로 물리고 뛰지 말라고 말했다. 뒤돌아 도망치다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등산 스틱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살금살금 뒷걸음질했다. 곰은 뭔가 고민하는 것 같더니, 숲으로 슥 들어갔다. 죽을 뻔한 순간이었다.


▲ 산행 중 마주친 곰. 멀리서 보면 커다란 나무 토막 같다.ⓒ 박준식


운행 145일째, 워싱턴주 스티븐스 패스(Stevens Pass)를 10km 남겨둔 지점이었다. 주변에 야생 블루베리와 허클베리가 많았다. 트레일을 걷던 중 2m 앞에서 부스럭거리며 시커멓게 일어섰다. 키 1.5m, 청소년 곰쯤 돼 보였다. 등산 스틱으로 치면 닿을 만한 거리였다.
우리가 뒤로 천천히 물러나자 일어섰던 곰은 네발로 앉았다. 다시 앞으로 가니 또 일어섰다. 지나가려고 하면 경계 태세를 보였다. 그러다 옆에 키 1m도 안 되는 어린 새끼 곰이 한 마리 나타났다. 이건 더 위험한 순간이다. 주변에 어미곰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때 어미 곰으로 추정되는 울음소리가 몇 번 울렸다. 새끼 곰들은 소리를 향해 사라졌다.



완주는 결과물이 아닌 부산물


9월 30일 밤 9시 45분. 최종 목적지 캐나다 국경 모뉴먼트78(Monument 78)에 다다랐다. 원래 하루 뒤에 가려고 했지만 눈이 비로 바뀌어 무리를 해서 더 걸었다. 당일 최장거리인 62km를 찍었다. 4월 15일 출발한 대장정은 무려 169일만에 막을 내렸다.


캐나다 국경지대인 모뉴먼트78 근처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비가 계속 내렸다. 우리는 마지막 웨딩사진 촬영을 위해서 옷을 갈아입고 모뉴먼트78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말의 두 배나 돼 보이는 덩치 큰 엘크 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왔다. 그가 수고했다며 우리를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 해발 4009미터 캘리포니아 포레스터 패스에서 찍은 웨딩사진.ⓒ 박준식


피시티를 걷다 만난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피시티에서의 6개월이 부부로서 평생 추억이 될 거라고. 나에게 완주는 결과물이 아닌 부산물이다. 여러 마을과 축제, 사람을 만나며 평생 잊지 못할 영감을 받았다. 감사, 위로, 따듯함, 기적 등 짧아도 강한 단어들 말이다. 피시티 여정이 세상을 보는 눈을 180도로 바꿔 놓았다.

4개월 뒤 우리는 서울 신혼집에서 첫 설날을 맞이했다. 결혼하고 처음 양가를 방문했다. 격식을 차리고 장인 장모께 인사를 드렸고 뻔하고 뻔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잔소리도 들어야 했다. 설 연휴가 통째로 증발한 것 같았다. 앞으로 이것을 계속해야 하니 갑갑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야기했다.

나 "그래도 지금이 피시티보다 덜 힘들지?"
아내 "그렇지. 피시티에 비하면 별 것 아니지."

keyword
이전 03화고시원을 나와 6개월을 걸었다, 매일 그만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