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길을 걷고자 하는 이에게
엮은이 LA돌고래
포기하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이하 피시티)은 만만한 길이 아니다. 미국 서부 멕시코 국경지대인 캄포를 시작해 캐나다 국경지대 매닝파크까지 4300km를 5~6개월 동안 걸어야 한다. 시인 찰스 부코스키가 말한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기관총 태양(Bright Machinegun Sun)’ 을 견뎌야 하고, 방향타를 잃어버린 내비게이션을 보며 설산 고봉을 통과해야 한다. 거대한 곰과 표범, 방울뱀은 호시탐탐 당신을 노린다.
악취미다. 한국인 피시티 도전자에게 이런 위험은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해를 넘어 한국인 도전자는 늘어 한 해 30~50명쯤 이 거친 길에 발 도장을 찍고 있다. 이 글은 위험천만했던 그들의 도전기다. 탬퍼로 꾹꾹 눌러 담아 내린 에스프레소처럼 강렬했던 기억을 뽑아냈다. 그 향이 공연히 날아가버릴까, 내가 글을 써보자고 제안한 이유다.
노량진 고시원을 탈출해 장거리 하이킹에 도전한 취업준비생, 고급호텔 허니문을 포기하고 거지꼴로 여행한 신혼부부, 서울 빌딩 숲 속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인색 2막을 선택한 모범생, 자살한 삼촌의 이름을 배낭에 새기고 걷는 조카. 그리고, 남편을 이 길에서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아내가 글을 썼다.
왜 생고생인가
죽을 만큼만 걷는다. 피시티는 사실상 일반인이 도전할 수 있는 최대 한도의 익스트림 스포츠다. 걸으면 또 걸어지는 것이 발이다. 왜 발이 부러지지 않나 원망스러울 뿐이다. 한 달쯤 견디면 몸이 각성한다. 하루 30~40km쯤 걷는다. 그때부터는 나무도 보이고 새도 보인다. 풍경이 들어온다. 하지만 매년 하이커가 조난하고 사망한다. 천재가 요절하는 것은 그만큼 농축해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던 어느 철학가의 말로 위로할 뿐이다. 다만 위험하다고 경고한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 미국 자연은 감히 힘 겨룰 상대가 아니다.
버려라. 짐 1g이라도 줄여야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다. 휴식 날을 위해 준비했던 옷을 찢어라. 있어 보이려고 챙겨 왔던 책도 불 태워라. 칫솔대도 잘라 몽당 칫솔로 만들라. 팬티도 입지 말고 걸어라. 하이커들은 버릴 수 있는 것은 죄다 버린다. 길 위의 로맨스를 꿈꾸며 준비해 둔 콘돔을 쓰레기통에 처박으며 하찮은 나를 돌아본다. 마음도, 단순해야 산다.
천혜 자연과 만남이다. 시뻘건 사막을 통과해 허브향 솔솔 풍기는 덤불을 지나고 깊고 깊은 설산을 통과한다. 사막에서 피 토하듯 색을 뿜어내는 야생화와 엄지손가락만 한 새가 친구가 된다. 마크 트웨인이 “지구상에 가장 멋진 풍광”이라는 표현했던 산상 호수 레이크타호도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만날 수 있다. 그뿐이겠는가.
호혜의 루트다. 피시티는 누군가 도움이 있어야 완주할 수 있다. 트레일 엔젤이라는 봉사활동가들이 그들을 돕는다. 일면식 없는 하이커에게 집과 마당에 잘 곳을 마련해주고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까지 내어준다. 히치하이크는 이 그림에선 클리셰일 뿐이다. 사막 한 가운데서는 각종 음료가 들어가 있는 아이스박스를 만날 수 있다. 하이커는 이것을 ‘트레일 매직’이라 부른다.
끝판대장은 허무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자문하는 횟수가 잦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이 길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목적지에는 전리품이 없다. 샴페인 거품처럼 술은 금방 식는다. 길 끝에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라는 퀘스트만 있을 뿐이다. 먹먹한 현실이자 아이러니다. 글쓴이들은 지금 더 길고 험한 루트를 각자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