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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Oct 03. 2016

효도는 못할망정

저는 도둑인가 봅니다

자라면서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했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도 유학 시절에도 제 힘으로 뭐 하나 한 적이 없고요.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라고 지금껏 곱게만 키워주셨어요.


물론, 뭐.

매번 달콤하지는 않으셨죠.

거친 언어로, 때로는 터프한 몸짓으로 사랑을 담뿍 표현하실 때도 있었죠.


어쨌든 삼십오 년 간 그렇게 사랑받고 컸으니까요.

더 바라면 안 되겠다고 어느 순간부터 마음먹었어요.

능력 없는 프리랜서(라 쓰는 백수입니다)라 효도는 못해도,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리지 말아야지 싶었어요.


이젠 정말 어른으로서 한 가정을 꾸리는 거니까요.

유유도 저도 둘이서 한 번 해보자! 약속한 거죠.

부자로 살지는 못해도 매일 소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자고요.


그런데 집에서 경제적 도움을 하나도 안 받겠다고 했지만요.

그런 건 결국 없더라고요.

불가능한 것 같아요.


지난번에 썼던 건데, 냄비 산거요.

백화점 세일을 하는데 10만 원짜리 냄비가 3만 9천 원이었거든요.

엄마가 사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결혼하게 될 '언젠가'를 생각하며 사두셨던 프라이팬도 받았고요.

예뻐서 쓰려고 사셨다가 사이즈가 안 맞아 못쓴 새 수저통도 챙기고요.

반찬 그릇, 머그컵, 소주잔, 찻잔 등등 포장해서 박스를 만들어 넣어두고 있습니다.


어, 그리고......

집에서 쓰던 선풍기를 내년에 바꾸신다고 그러셔서요.

그럼 버릴 거 저한테 달라고 했어요.


엄마가 네 마음대로 하라고.

빨간 테이프 줄 테니 원하는 거에 붙여서 다 갖고 가라고.

집에 쓰던 못까지 다 빼가도 된다고 하시네요. 허허허.


호기롭게 돈 한 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요.

현물은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금야금 집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챙기고 있어요.


자식은 다 도둑인가 봅니다.

아니, 제가 도둑인가 봅니다.

이여사님이 집에 도둑괭이를 키우신 것 같습니다.


박스에 하나둘씩 챙기며 제가 얘기했어요.


어마마마, 소녀가 꼬옥 효도하겠사옵니다.


이여사님 왈


그지X,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효도니라.


아, 그렇군요. 어머님.

넵!! 곧!!!




참, 시가든 친가든 부모님들께서 연세 드시고 편찮아지시면 제가 모시겠다고 했거든요.

근데 왜 어른들께서 황급히 고개를 저으시는 걸까요?

두 손까지 마구 저으시면서요.

전 진지 한대요.


이여사님 왈:


너나 잘해, 제발. 너나. 네 앞가림도 못하는 게 누굴 봉양해, 이 모지리야!
너랑 같이 살면 밥도 못 얻어먹겠다!!!


하-, 효도를 한대도 다들 안 믿고......

삐졌어요, 흥!!!




160307. My lovely mom in Okinawa, Japan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9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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