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행복을 저금하지 마세요

- 사사키 후미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by hearida

"이제 아이만 생기면 나는 행복해질 거야."

내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행복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어떤 조건을 달성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행복 산'의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그 산을 끝까지 오른 사람에게 행복이 제공된다거나 '행복마라톤대회'에서 결승 테이프만 끊으면 행복이라는 이름의 메달을 받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그런 정상이나 목적지 같은 형태가 아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순간적으로 느낀 행복에도 금세 익숙해지고 당연한 일상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는 일은 없다. 행복은 그때마다 '느끼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뿐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내일도 모레도, 1년 후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내일도 모레도, 1년 후에도 찾아오는 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바로 지금부터 언제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 사사키 후미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저희 집 식구들은 살이 잘 찌지 않아요.

오죽하면 저희 엄마 평생 소원이 42kg가 되는 거라니까요.

가족들이 다들 아주 빼짝 말랐어요.


그런데 저는요, 금세 살이 붙는 체질이었어요.

물만 마셔도 막 살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워낙 먹는 걸 좋아했어요.

세상에 맛있지 않은 음식이 없었으니까요.

사춘기 들어 먹성이 좋아지더니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살이 막 찌더라고요.

1년에 5kg씩 붙기 시작했으니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15kg도 넘게 쪘어요.

라면도 한창 때는 세 개 끓여서 밥까지 말아먹고, 케이크도 혼자 하나는 거뜬히 해치웠답니다.

학교 수업 마치고 친구랑 패밀리 사이즈 피자 세트를 먹어치우고,

노래방 가서 목이 터져라 열창한 후에 나와서는 다시 후식으로 와퍼 세트를 흡입하곤 했죠.


이러니 살이 안 찌는 게 이상하잖아요.

사실 먹은 거에 비해선 안 찐 거죠.

먹고 누워서 바로 자고, 이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근데 살쪘다고 구박을 너무 받다 보니까 어느 날부터 살이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가족 중에는 살찐 사람이 없으니까 제 마음을 아무도 몰라줬어요.

이것저것 다 너무 맛있기만 한 제가 집에서는 꼭 돌연변이 같았어요.

잘 먹는 집에서 태어났으면 내가 이런 괄시를 받았겠나 싶어서 가족들이 너무 야속했어요.


그러다 대학에 들어갔는데 좋아하는 오빠가 생긴 거예요.

근데 세상에, 어느 날 그 오빠가 제 팔뚝을 붙잡고 자기 팔뚝을 옆에 대더니 '어, 나랑 똑같네!' 하대요.

안 좋아하는 사람이 해도 열 받는데, 첫사랑한테 그 말을 들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날의 충격을 음식 앞에서 되새기며 반년만에 이 악물고 10kg을 뺐어요.

그리고 그 후로 날씬하진 않지만 아주 찌지도 않은 상태가 겨우 겨우 유지됐어요.


그러다 유학을 갔어요.

그런데 혼자 있으니까 마음이 너무 허한 거예요.

가족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그립고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기분이었어요.

그 구멍을 채우기 위해 밥도 잘 먹고 간식도 잘 먹고 야식도 먹다 보니까 살이 다시 쪘어요.

하필 알바는 왜 또 빵집에서 해가지고.

덕분에 방학 때 인천 공항에서 엄마가 못 알아보셨어요.


그래서 제 이십 대 최대 고민 중에 하나는 살이었어요.

정말 살만 빼면 다 될 것 같았어요.

엄청난 미인도 되고, 멋진 사랑도 하고, 일도 잘 풀리고요.

그러다 보니 먹는 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아졌고 자연스레 섭식 장애로 이어졌어요.

그걸 고치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요.


살찐 게 내가 모자라다는 증거인 것만 같아서 사람들 앞에서 자주 위축됐어요.

길을 걸으면 다른 사람들하고 병적으로 나를 비교하곤 했어요.

정말 그때는 무언가 하는 이유도 살 때문이고 무언가 하지 않는 이유도 살 때문이었어요.

살이 찐 나는 이런 걸 하면 웃음거리가 될 테니 살이 빠지면 하자.

이런 생각뿐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이요?

이상하게 나이 들면서 살이 쭉쭉 빠져요.

이십 대엔 제가 평발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발가락 뼈 마디마디가 너무 잘 보이고요.

쇄골은 만져지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물 한 바가지 가득 고일 정도예요.

되려 너무 말랐다고 걱정을 듣는 날이 살다 보니 오네요.


자, 그래서!

지금 제가 미인이 됐느냐?

글쎄요. 그건 좀......


아무래도 저는 미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요, 제가 참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름 매력도 철철 넘치고 사랑스러운 면도 가득 있어요.

모든 사람을 사로잡을만한 치명적인 미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 제가 너무 좋아요.

하지만 이렇게 된 게 살이 빠져서는 아니에요.

저는 원래 꽤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안 되는 모든 이유를 살로 돌리며 살았던 거예요.

몇 kg만 되면 나도 미인이 되고 나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멋대로 정해버린 거죠.


지금 다시 20대의 저로 돌아간다면 좀 더 재밌게 살 것 같아요.

다리 좀 두꺼워도 이 옷 저 옷 도전해보고요.

뱃살 좀 나왔어도 사람들 앞에서 더 당당하게 서고요.

턱살 좀 있어도 더 활짝 웃고요.

팔뚝 살이 두꺼워도 기분 좋으면 두 팔 들어 신나게 몸을 흔들었을 거예요.

남들이 뭐라고 해도 그게 뭐 어때요?

그 사람들이 제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해봤자 그 순간뿐인걸요.

그런 것보다 제 시간, 제 마음, 제 삶이 더 소중한 거였는데 그걸 너무 몰랐어요.


몇 년 전, 체중계 위에서 열일곱 살 때부터 바라던 몸무게가 드디어 현실로 반짝거리던 때.

기분은 좋았어요.

네, 잠깐은 행복했어요.

하지만 그게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어요.

행복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데.

조건을 달아두고, 언젠가라는 미지의 시간을 기다리다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버렸어요.


지금 저의 행복을 구성하는 건 제 몸에 붙어 있는 지방의 무게가 아니에요.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

책을 읽다 마음에 닿는 한 문장을 발견하는 순간

창 밖으로 들리는 아이의 웃음소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맛을 음미할 수 있는 한 그릇의 밥

이런 것들이에요.


우리는 지금 이대로 완전해요.

행복은 사람을 가리지 않아요.

살이나 능력이나 돈 같은 걸로 행복이 사람을 구분하지는 않아요.

가리는 건 우리겠죠.

지금의 행복을 막아서서 자신이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내치는 사람.

다 우리 자신이겠죠.


행복을 미루지 마세요.

행복을 저금하지 마세요.

행복은 오직 지금 당장, 바로 이 순간에만 가질 수 있는 거니까요.


어떤 편견이나 상처, 그 누구도.

설령 당신마저도 지금 당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 행복을 밀어내지 않기를.

당신 곁에 소복이 쌓여있는 소소한 행복들이

가을바람 끝에 떨어지는 고운 단풍처럼 그렇게 당신에게 가득 쏟아지기를.

행복하세요, 완전한 당신.



Mount Rigi in Lucern, Switzerland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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