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죽음은 알 수 없으니 사는 동안에

-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중에서

by hearida

"생사를 놓고 고민할 만큼 인간을 궁지로 몰아붙인 지대하고 심각한 문제들. 죽은 이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 머문 곳까지 찾아와 암울하고 축축한 얼룩으로 물들인 가난이나 외로움 따위는 죽음의 문을 넘는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어지고, 그 아무리 중차대한 것조차 하찮게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돼버린다면 참 기쁠 것 같다."


"어차피 지갑이 홀쭉하나 배불러 터지나 지금 웃고 있다면 그 순간만은 행복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중에서



공포영화도 싫고 SF도 별로고 막장 드라마도 질색이지만 가장 보기 싫은 건 뉴스입니다.


뉴스에는 꼭 세상의 비극이 다 모여 있는 것만 같거든요.

좋은 일, 축하할 일, 마음 따듯해지는 일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

불행하고 억울하고 슬픈 사건은 어찌 그리 많은지.

더구나 그런 끔찍한 사건을

담담하고 간결한 몇 줄의 문장으로 전하는 뉴스의 속성이라는 게

너무 차갑고 잔인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저도 그렇게 무덤덤해지는 것만 같아 무섭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무리 뉴스를 멀리해도

알고 싶지 않은 세상의 많은 일들이

기어이 제 앞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야 맙니다.


끔찍한 학대를 당한 아이나

보호받지 못하고 사지에 버려진 노인,

납득할 수 없는 여러 이유로 차별을 경험하는 이들과

아무리 노력해도 감당할 수 없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전쟁과 사기, 강도와 성폭력, 음주운전과 묻지 마 폭행 등등.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지구가 죄를 지은 자들이 모여 사는 우주의 지옥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곤 합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면

얄궂은 운명과 예고 없는 비극, 어쩌지 못하는 불평등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래서인지 사는 게 자꾸 무서워집니다.

이 많은 불행이 나의 것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자주 두렵고 겁이 나곤 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은

좀 더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난이나 외로움, 또는 이 모든 어려움이

죽음의 문 너머에서는 모두 사라지고 그저 무無의 상태가 된다면.

이 곳에서의 모든 욕심과 욕망,

이를테면 돈이나 명예나 물질이나 영생과도 같은 것들이

그곳에서는 연기처럼 다 사라진다면.


그렇다면 언젠가

찾아올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단 하나,

세상에서 쌓은 선악의 무게만이 평가받는 세계가

죽음 너머에 있다면

이 삶에서 양보하고 질서를 지키고 서로 사랑하며

마음의 좋은 부분을 지켜가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도 같습니다.


아이를 가지고 나니

죽음의 공포와는 별개로 삶에 대한 애착은 자꾸만 커져갑니다.

내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아이를 할 수 있는 한 지키고 보살피고 싶어 집니다.

그러다 기어이

이 아이보다는 앞서서

엄마로 성실히 살아온 낡은 등으로 인사하며

이승에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곳으로

웃으며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죽음은 누구도 보장하지 못하고

우리는 겨우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에 불과하므로

그저 살아 있는 이 순간에

되도록 많이 웃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담뿍 행복하기로 다짐해봅니다.


이 밤,

제가 가늠할 수 없는 고독과 아픔의 자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직접 그 등을 어루만질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이 어둠을 잘 건너가기를 바라는

이 진심만은 가 닿기를 바라며.

아무쪼록 살아있는 동안 행복에 더 가까운 날들 되세요.


Lisbon, Portugal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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