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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Oct 31. 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 유시민, '청춘의 독서' 중에서

"나는 『죄와 벌』을 읽으면서 가난의 책임이 가난한 사람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사실 '생각'이라기보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사회제도와 빈곤의 상호관계 또는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인지한 것이 아니었기에 '느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이 느낌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불러왔다. '만약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악덕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사회악은 도대체 왜 생겨났는가? 사회악을 완화하거나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유시민, '청춘의 독서' 중에서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이

미처 제 색을 다 바꾸기도 전에

벌써 겨울이 온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만큼

추운 오늘이에요.


하지만

살갗에 닿는 바람보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세상사에

부쩍 더

한기가 드는 요즘입니다.


왜 하필

우리,

이런 못난 세상에 태어났나

자꾸만

그런 한스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흙수저니 금수저니

사람이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고

학벌이니 재력이니

사랑이 사랑만으로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세상.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제든

그렇지 않은 세상은 있었나,

싶습니다.


지금의 혼란과 부패 이전에

이념의 문제로 핍박받던 시대도 있었고

호환과 마마가 걱정이던 때도 있었고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던 적도 있었고

양반과 천민으로 사람을 가르던 날도 있었죠.


호시절이라 부르던 때에도

음지에서 눈물짓던 사람들과

영문도 모르고 죽어나가던 자들과

이유 없이 차별받던 이들은

여전히 존재했어요.


어쩌면 정말 삶이란

고난일 수밖에 없을지도요.

고통과 두려움은

살아있는 자의

특권 같은 것일지도요.


하지만 이 역사가

그 시대의 불행에서 머물지 않고

이렇게 이어져 온 것은,

인간이 여전히

약간의 존엄이나마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래도 우리의 삶을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꼭 쥐고 붙잡았기 때문에.


슬픔 속에서도

아픔 속에서도

되도록 선하려 애쓰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우리는,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사람을 믿어요.

우리가 가진 힘,

그 안의 선을 믿고

앞으로도 믿으며 살아가고 싶어요.


우리가 가진 선의가

인간의 마음에 싹튼 아름다움이

옳음에 대한 확신이

하나로 모아져

부디 힘을 발하길.


그리하여 아무쪼록

우주의 티끌보다 작은,

태어난 이후부터

줄곧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는,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인 우리가


그럼에도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찾아

그것을 담뿍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힘든 날이네요,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

월요일.

추위가 몰아치고

혼란이 요동치는

그런 오늘.


아무쪼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온기가 당신 곁에 가득하기를.

오늘도 그렇게

담뿍, 담뿍 행복하기를.


감사해요, 언제나. :)





Goreme, Turkey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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