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바라보는 나 보여지는 나

-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중에서

by hearida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 인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아무리 집착해도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때로 나는 나를 둘로 나눈다. '보여지는 나'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고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바라본다. '보여지는 나'는 나라기보다는 나로 보이고 싶어 하는 나이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는 그저 본다. 영화관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꽤 괜찮은 남자를 보는 정도의, 호의를 품은 타인의 시선으로, 그때 나를 보는 '바라보는 나'의 눈에는 나라는 자아가 제거되어 있다. 그러면 고통에 대해서 조금은 둔감해질 수 있는 것이다. 대신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상관없다."


-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중에서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는 영 소질이 없었어요.

그것도 일종의 손재주잖아요.

워낙 곰손이라 손으로 하는 건 거의 잘 못해요.

하다못해 밥 먹을 때 찌개 푸는 것도 서툴다니까요.


어쨌든 그런 연유로 화장도 잘 못하는데, 그나마 하는 게 눈화장이었어요.

사실 제가 쌍꺼풀이 없고 눈이 좀 처졌거든요.

그래서 눈 화장을 하면 극적으로 이미지가 달라져요.

그리고 덧그리다 나중에는 100m 밖에서도 티가 날만큼 엄청 진해졌어요.

그때는 그러지 않으면 창피해서 밖에도 안 나가고 사람들도 안 만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눈 화장을 안 하게 됐어요.

지금은 선크림 하나에 립이나 살짝 바르는 정도죠.

귀찮아지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에 간극이 너무 벌어지지는 게 싫어졌어요.

집에 있을 때나 밖에 나갈 때.

혼자 있을 때나 사람들과 있을 때.

자연스러운 나와 꾸민 나의 차이가 너무 커지니 해야 할 일도 가릴 것도 많아지더라고요.


저는 그게 좀 불편해졌어요.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 건데.

덜 잘나 보이고 덜 예뻐 보이고 덜 꾸며도, 많이 숨기지 않는 지금이 저는 더 편해요.

사람들에게도 전보다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나를 지니고 살잖아요.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우리가 스스로를 부족하다 여기는 것은,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이래요.

우리가 보는 상대방은 상대방에게 있어서는 '보여지는 나'잖아요.

연예인이든 성공한 사람이든 결국 남들이 보는 건 '보여지는' 모습이죠.

하지만 그들도 '바라보는 나'였을 때는 화장실도 가고 욕도 하고 머리도 안 감을 때가 있을 거예요.


우리는 자신의 '바라보는 나'일 때의 모습이 너무 기억에 남아서, 남들이 볼 때도 자신의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지만요.

우리도 타인에겐 '보여지는 나'라서 누군가는 어쩌면 그런 나를 부러워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우리,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고민하지 않았으면 해요.

스스로에 대해 조금 더 자신을 가지고 더 사랑해줘도 되지 않을까요?

'바라보는 나'는 누구나 조금은 부끄러운 모습을 지니듯 '보여지는 나'는 누구나 조금은 멋진 모습이 있으니까요.


우리의 가장 여린 속살까지 따스함이 깃드는 그런 하루 되기를.

부디 담뿍,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Seljuk, Turkey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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