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라는 말 뒤에는 언제나

- 김애란, '달려라, 아비' 중에서

by hearida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질 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 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 김애란, '달려라, 아비' 중에서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네요.


오늘은,

수능날.


벌써 수능을 본지도

16년이 됐어요.

벌써네요, 벌써.


시간이 참 빨라요.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는

명동 한복판에서 꼬치를 입에 물고


"우리 내년이면 스무 살이야!"


이러고는

깜짝 놀라 웃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말이에요.


마음만은 십팔 청춘,

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는 사실이

왠지 서글픈 아침입니다.


수능,

하면 단어만으로도 긴장감이 넘치는데요.


저는 사실 수능날 떠오르는 기억이

배고팠던 것밖에 없어요.


체할까 봐 죽을 먹고 갔는데

소화가 어찌나 빨리 되던지.


언어영역 시간에 꼬르륵 소리가 너무 크게 나서

시험이고 뭐고

문제지를 잡고 펄럭이며 소리를 감추려던,


네,

저는 그런 열아홉이었네요.


부끄럼도 많고 웃을 일도 많던 열아홉을 지나

스무 살을 통과해 이십 대도 지나

서른도 넘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또다시

벌써네요, 벌써.


지나온 길은 선명히 기억나는데

앞으로 갈 길은

뿌옇기만 하고 상상도 되지 않아요.


얼마나 남았는지

그 길에 무엇이 있을지

언제나 물음표네요.


지나온 길이 아무리 멀다한들

갈 길을 가늠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는 언제나


물음표를 지닌

어린아이입니다.


그리하여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나는, 하고 생각하는 거겠죠.


부디 우리

나는, 이라 말하고

뒤에 아프고 슬픈 말은 붙이지 말았으면 해요.


우리의 나는,

뒤에는 항상

고운 단어가 함께 하기를.


그 고운 단어 하나로

보이지 않는 길 앞에

작은 불 하나 켜져 넘어지지 않기를.


그렇게 오늘도

담뿍,

담뿍 행복하기를.


아울러,

지금 이 순간 시험장에 있는 모든 이들과

그곳을 택하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도


언제나

따스함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랄게요.


감사해요, 항상.




Zurich, Switzerland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