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하야 아카네, '벚꽃이 피었다' 중에서
스무 살.
신입생으로 봄을 맞이하던 그때, 저는 열 가지의 목표를 세웠어요.
다이어트, 장학금, 연애...
뻔히 예상되는 목록 외에 지금도 기억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요.
'핸드폰 연락처 100명 채우기' 였어요.
그 성격 어디 안 간다고 그때도 엄청 폐쇄적이었거든요.
그렇다고 내성적인 건 또 아닌 게요.
낯도 안 가리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곧잘 하고요.
거기다 엄청 웃겨요, 제가. 헤헤.
그런데 그 관계를 오래 가져가지 못하거든요.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 거예요.
한때는 사람들 흠이 너무 잘 보이고, 속이 뻔하고 훤히 보이는 게 진짜 싫더라고요.
안 보이면 마는 거고, 보여도 넘어가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제가 밉기도 하고요.
여하튼 스무 살이 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을 사귀어보자, 했죠.
그리고 덕분에 이십 대 초반에는 정말 다양한 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다시 도돌이표였어요.
억지로 당기기만 하던 고무줄이 어느 날, 슝- 하고 제자리를 찾은 거죠.
그리고 그때부터 인정했어요.
아, 나는 사람들을 많이 품을 만큼 넓은 마음을 가지지는 못했구나.
그러니 있는 사람한테나 잘 하자, 하고요.
사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오는 말들이 저는 참 싫더라고요.
좋은 얘기가 아닌 이상 돌아오는 길은 뒷덜미가 켕기기도 하고요.
그런데 같이 있으면 어떻게든 저도 한 마디 거들게 되니까요.
사실 제 얘기에는 뭐 크게 신경은 안 쓰는데요.
이러쿵저러쿵하는 거 썩 유쾌한 건 아니죠.
그것도 안 친한 사람이나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면 그러려니 하긴 하지만요.
제 사람이 아니면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런데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뒤통수를 치는 건 견디기 힘드네요.
이제는 단련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요.
맞을 때마다 새롭게 아프고, 상처 난 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욱신거리고 회복도 느려요.
인생은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지만 생각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는 쉽지 않네요.
그냥 당신과 나의 친밀함에 차이가 있었던 거려니, 하려고요.
혼자 조용히 또 하나의 문을 닫아야겠죠.
그리고 열려있는 문으로 들어가 늘 포근히 맞아주는 방 안에서 좀 쉬어야겠어요.
늘 그랬듯이.
기적처럼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왔네요.
소리 없이 꽃망울을 틔운 벚꽃은 어느새 봄바람을 타고 다시 떠났어요.
따스한 볕도 준비운동이 끝나면 곧 온 힘을 다해 대지를 달구겠죠.
그렇게 다시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계절이 가듯 시간이 가듯
그렇게 사람도 가는 거겠죠.
머물지 못하는 것들을 놓지 못해 움켜쥐다 결국 그림자만 손에 남지 않도록
떠날 것은 떠나보내고 남겨진 것들은 품에 담아
그렇게 또 이 하루를 살아낼래요.
부디 봄의 한가운데서
모두 담뿍,
담뿍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항상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