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앞에서 진실할 수만 있다면

- 『Axt』편집부, '이것이 나의 도끼다' 공지영 작가 인터뷰 중에서

by hearida

"인생을 살아오며 절절히 느낀 것이 있다. 언제나 똑같은 원칙이 보였다. 그것은 그나마 진실이 모두를 덜 다치게 한다는 것. 진실이 우리를 해칠 것 같고, 바르게 얘기하면 고통을 받을 테니 숨겨야 할 것 같지만, 아니다. 진실만이 우리를 가장 덜 다치게 할 수 있다."


- 『Axt』편집부, '이것이 나의 도끼다' 공지영 작가 인터뷰 중에서



예전에도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저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어요.

벌써 한 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마음이 풍선처럼

어떤 날은 크게 부풀어 하늘 높이 날아다니다

또 어떤 날은 바람이 빠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곤 했어요.


이유는 다양해요.

유년기의 상처나 유학시절의 향수, 타고난 성격적 결함 등등

누구나 겪어봤음직 하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런 거요.


한 번쯤 병원에 가봐야지 생각은 오래 했는데 용기가 안 났어요.

그렇더라고요.

내가 미쳤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증하게 되는 건 아닌지 무서웠어요.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남편에게 용기를 얻어 병원에 갔어요.

마음이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졌거든요.


그렇게 얻은 공식적 병명은

만성 우울, 불안장애, 수면장애와 같은 것들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약을 복용했어요.


저는 이 사실을 다 오픈했거든요.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했어요.

진단명, 복용하는 약, 그 후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요.


그러면서 좋았던 건

'저 기지배, 성격이 안 좋구나' 가 아니라

'아, 아픈 곳이 있는 거구나' 하는 이해를 얻었던 거예요.


물론 제 앞에선 웃지만

돌아서서는 혀를 끌끌 차고 이상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거고요.


대신 저를 정말 아끼는 사람들,

또 제가 정말 이해받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들이 참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엄마나 절친이나 연인에게

불쑥 자기만의 동굴로 숨어 움츠러드는 제가

상대를 괴롭히려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릴 수 있었거든요.


처음 약을 먹었을 땐 넉없이 며칠 내내 종일 잠만 자고

입맛도 없어서 살도 걱정될 만큼 많이 빠지고

구름 위를 걷듯 멍하기도 했어요.


힘든 얘기를 하나씩 할 때마다 약이 늘어서

한 때는 아침저녁으로 열세 알까지 먹었었거든요.

그런데 작년 말부터는 천천히 줄이고 있어요.


아무래도 약이 다른 장기에 부담이 되는 것도 있고

약에만 의존하게 되는 것도 싫고

또 저에게 허락된다면 아이도 갖고 싶거든요.


그래서 이제 드디어!

마지막 하루 한 알을 먹는 달이에요.

다음 달부턴 약을 완전히 끊기로 계획하고 있어요.


그런데 날이 좋아서 그런가 마음이 조급해져서

며칠 약을 안 먹었어요, 임의로.

그랬더니 금단 증상이 생겼어요.


그 전에도 멋대로 약을 거르면 아팠거든요.

그래서 늘 조심하고 의사 선생님 말씀을 따랐는데

이제 한 알이니까 하고 방심했나 봐요.


제가 먹는 약은 안전하기는 한데

반감기가 짧아서 금단 증상이 심할 수 있거든요.

반성하고 다시 처방대로 잘 복용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다시

맑은 컨디션으로 돌아왔습니다.

짠! 하하- :)


어제 제가 속상해하고 아파하니까

남편이 곁에 와서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얘기했어요.


"약을 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이 튼튼해지는 게 중요한 거야,

괜찮아."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를 만나기 전에 나는 이리저리 휘날리는 풍선 같았는데

이젠 자기가 나를 꼭 잡아주고 있어서

바람이 불어도 무섭지 않아, 고마워."


그 후로 한참을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씻고 그러다 누웠는데

남편이 곁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어디로도 날아가지 마. 우리 함께 있자." 하고요.

덕분에 지난 밤에는

곤한 잠에 빠질 수 있었어요.


감기가 걸리면 감기약을 먹고

체하면 소화제를 먹듯

저는 마음이 아파 마음 약을 먹어요.


감기가 걸리면 머리에 찬 수건을 대어주듯

체하면 열 손가락을 따주듯

제 곁에는


마음이 아픈 저를

잡아주고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는 매일 건강할 수는 없어서

가끔은 몸이 아프고

가끔은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래서 어떤 날은

아픔과 외로움과 서러움에

눈물도 나겠지만


나의 아픔 앞에서 진실할 수만 있다면

상대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만 있다면

아픔도 언젠가는 가실 거예요.


분명,

다 나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오늘은

부디 누구도 아프지 않기를.

그렇게 담뿍 행복하기를.


항상 감사해요.

진심으로

진심으로요. :)




Annapurna Mt., Nepal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