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그때의 내가 아직, 반짝반짝

- 이사카 고타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중에서

by hearida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것은 언어의 형태이기도 했고, 과거 기억의 한 장면이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 다른 노래에 맞춰 춤추는 친구들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맞출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든 따라 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몸을 움직이던 고등학생인 내가 있었다. 비참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다. 순간 고쿠보 아키를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이 내면을 뒤덮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때의 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춤췄던 그때의 내가 좋았다. 그것만큼은 틀림없었다. 그때의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 이사카 고타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중에서



잠시 튼 TV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하는데

아주 예쁜 여학생들이 나와서 잠시 넋을 잃고 바라봤어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고 야무지게 말도 잘하는 한 친구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됐다네요.


고등학교 1학년,

열일곱의 저를 떠올려봤어요.


두꺼운 뿔테 안경에 치아교정기를 끼고

귀밑으로 바싹 자른 단발머리는 심한 곱슬.


얼굴에는 여드름 꽃이 피고 살이 토실토실 올라

튼튼한 다리에는 늘 흰 양말에 검정 구두.


부끄럼도 많고 눈물도 잦고 신경 쓸 일도 참 많던

예민하고 폐쇄적이던 그 시절의 저를요.


그게 벌써 20년 전이네요.

지나간 세월은 늘 너무 빠르게 흐른 듯 느껴져요.


만약에 다시 돌아가라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가라면


글쎄요,

그럴 수 있을까요.


지금은 젖살도 빠지고

촌스럼도 사라지고


스스럼없이 나서거나 말도 잘 하고

실수도 줄고 흥분할 일도 별로 없고


아무래도 지금이

지내기는 많이 편하죠.


그래도 자꾸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 건

종종 그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건


그때의 제게

소중한 무언가가 가득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에요.


이제는 마음 저쪽에 꼭 닫힌 과거의 방에

먼지가 뿌옇게 쌓인 열일곱의 상자를 열면


그때의 제가

아직 반짝반짝 빛날 것만 같아서에요.


사람을 만나면 의심보단 믿음이 앞섰던

꿈도 많고 웃음도 많았던 그런 저 말이에요.


살면서 요령도 생기고

모난 마음도 닳고 닳아 편해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정말 소중한 것은

마음에 꼭 품으며 살고 싶어요.


못나고 모자랐지만 선함이 더 많던

그런 과거의 제 손을 꼭 잡고 나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

지금의 나도 있는 힘껏 사랑해주고 싶어요.


겹겹이 쌓인 과거를 지나

지금에 이른 우리.


후회나 자책은 잠시 잊고

오늘은 있는 힘껏 나를 아껴주기를.


먼 훗날 그리워하기 전에

시간이 흘러 후회하기 전에.


그렇게 담뿍

담뿍 행복하기를.


Zurich, Switzerland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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