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기다림의 까만 밤이 계속돼도

-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중에서

by hearida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중에서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아직 없지만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른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후로

한동안은 무언가를 내내 원하고 바라고 간절히 소망하다

또 무너져 내리다 다시 갈구하는 날들이었어요.


그건 때로는 사랑이기도 했고

사람이기도 했으며

꿈이나 삶이나

때로는 아주 작은 물건 같은 것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것을 열망하던 마음과는 또 다르게

막상 지니고 나면

괜스레 쓸쓸해지는 마음은 왜일까

늘 고민이 됐어요.


아마도 그건

어떤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겠지요.

미처 몰랐었던

혹은 알고 싶지 않았던.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설령 그것이 온다 해서

영원히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엔딩으로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거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잃기 싫어 애달퍼하는 마음이

함께 온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거나

혹은 기필코 이별이 온다는 것을 또는 바람보다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유독 손녀를 이뻐하시던 할아버지가

퇴근길에 마을 어귀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시면

작은 언덕을 신명 나게 내달려

할아버지 품에 폭 파고들곤 했어요.


두툼하던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집에 돌아오는

그런 기쁨, 그런 온전한 기쁨은

이제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것이 어른의 맛인가 싶어 씁쓸해진 입가를 한동안 다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찰나의 순간,

실금 같은 틈새에도

빛은 언제나 스며들기도 하죠.


제 경우에는

곁에서 잠든 사람의 건강한 코골이나

뱃속의 아이의 힘찬 움직임이나

작은 동물이 내게 보내는 한없이 신뢰하는 눈빛 같은 것이기도 해요.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는

까만 밤이 계속돼도

작은 별빛은 우리를 위로하며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설령 기다림에 지친 나를 반기지 않는

뜨거운 한낮의 태양이 내 속을 태워도

부드러운 바람은

우리를 어루만지며 곁을 맴도니


어른으로 사는 일의 서글픔도 때로는 잊고

당신의 별과 바람을 담뿍 맞는

오늘은 아무쪼록 그런 하루를 보내기를.

그렇게 우리 담뿍 행복하기를.



Dubrovnik, Croatia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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