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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Sep 01. 2022

책에는 마음이 있지

- 나쓰카와 소스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고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나쓰키 린타로. 그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서점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외톨이 같은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린타로에게 고모가 서점을 정리하고 함께 살기를 선언한다.

안식처가 되어준 서점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해 유일한 벗이었던 책을 정리하던 린타로의 앞에 갑자기 인간의 말을 하는 얼룩 고양이 '얼룩'이 나타나 책을 지키기 위해 힘을 빌려달라 부탁하는데......

읽은 책의 수로 경쟁하는 지식인, 줄거리만 알면 충분하다는 학자, 많은 책을 팔 아치 우려 고만하는 출판사 사장. 린타로는 이제 책을 가두는 자와 책을 자르는 자, 그리고 책을 팔아치우는 자의 미궁 속에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과연 그는 책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종이 책이 업신여겨지는 요즘. 대체 어떻게 해야 책이 사람들에게 널리 읽힐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읽다가, 결국 책의 변함없는 가치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다다르게 되었다.

책의 가치라...

그걸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정말 어렵다. 누군가에게 책은 지식의 보고이며, 누군가에게 책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며, 누군가에게 책은 늘 곁에 두어야 안심이 되는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허영의 과시이며, 누군가에게는 수면제이고, 누군가에게 책은 그저 무게가 나가는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뭐, 나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재미있어서 읽는다. 사람들을 만나 수다 떠는 것보다,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영화나 술보다, 내게는 책을 읽는 게 가장 즐겁다. 책이 있어야 진정한 휴식처럼 느껴진다. 어째서 팔리는지 모르더라도, 왜 좋은지 모르더라도, 나에게 의미와 재미가 있다면 늘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린타로에게 책은 사람과 이어지는 길이다. 그는 미궁 속에서 책을 지켜가면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책의 커다란 힘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람을 사귀는 일의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책을 통해 사람과 연결된다.


이 책은 그다지 어렵지 않고, 판타지 요소를 결합해서 재미있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작은 불만이긴 한데... 책을 지키는 방식이 가끔 너무 딱딱하고 일방적이다.

예를 들어 출판사가 팔리는 책을 출판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그 역시 세상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책을 지키는 하나의 노력이 아닌가. 그리고 책을 줄거리만 읽다가 흥미를 느껴 다 읽을 수도 있는 거고, 가벼운 책을 읽다 읽는 자체에 재미가 들려 다양한 책에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는 건데. 무조건 정독만, 고전만, 이렇게 '무조건' 고집하는 건 오히려 사람들을 책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주변에 편식을 걱정해서 몸에 좋은 것들을 먹이려다 종종 식사 자체에 거부감이 들어버린 아이를 볼 때가 있다. 너무 단 것, 입에 맞는 것만 먹이는 것도 좋지 않지만 아이 식사의 최우선 가치는 먹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처럼 베스트셀러나 시류에 편승한 책만 읽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책과 한정된 독서방식만 강요하는 건 책과 단절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뭐든 시작은 즐겁게. 내게 맞는 것부터 차근차근. 편식은 시간이 해결해주니까.


책이 중요하다 강제할 것이 아니라,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단 우리나라 책을 좀 더 가볍게 만들자고 건의한다! (전자책은 싫은 종이책 덕후 올림)

아, 거기다 명색이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라면서 고양이는 전혀 활약하지 않는다니. 이거 사기 아닌가?




"겁먹을 것 없어. 그냥 허세일뿐이야. 문만 크고 안채는 빈약한 인간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지."
"책에는 커다란 힘이 있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책의 힘이지 네 힘은 아니야."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란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채워도 네가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 발로 걷지 않으면 모든 건 공허한 가짜에 불과해."
할아버지는 어려운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손자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책이 네 대신 인생을 걸어가 주지는 않는단다. 네 발로 걷는 걸 잊어버리면 네 머릿속에 쌓인 지식은 낡은 지식으로 가득 찬 백과사전이나 마찬가지야. 누군가가 펼쳐주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골동품에 불과하게 되지."
"책을 읽는다고 꼭 기분이 좋아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아. 때로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면서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거나 머리를 껴안으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탁 펼쳐지는 거란다. 기나긴 등산길을 다 올라가면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야."
"독서에도 힘든 독서라는 게 있지. 물론 유쾌한 독서가 좋단다. 하지만 유쾌하기만 한 등산로는 눈에 보이는 경치에도 한계가 있어. 길이 험하다고 해서 산을 비난해서는 안 돼. 숨을 헐떡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것도 등산의 또 다른 즐거움이란다."
"(...) 음악이 음표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 것처럼 책도 말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니까요."
"좋은 마음가짐이야. 부조리에 가득 찬 세계에서 살아갈 때 가장 좋은 무기는 논리나 완력이 아니지."
"그래, 유머야."
"책에는 마음이 있지."
별빛을 받고 얼룩 고양이의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다.
"책은 존재하는 것만으론 단순한 종잇조각에 불과해. 위대한 힘을 감추고 있는 걸작도, 장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대작도 펼치지 않으면 하찮은 종잇조각일 뿐이지.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담아 소중하게 간직한 책에는 마음이 깃들게 되는 법이야."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약한 자를 괴롭히면 안 된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런 건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점점 당연하지 않게 되고 있어요. 당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왜 그래야 하지?'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죠. 왜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요. 이건 논리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어요. 논리로 말하기보다 훨씬 소중한 것,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죠."
린타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열심히 말을 짜냈다.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걸 가르쳐주는 게 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 힘이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거예요."
"책이 쉽다는 건 네가 아는 게 쓰여 있다는 증거야. 어렵다는 건 새로운 게 쓰여 있다는 증거고."



- 헤아리.다;hea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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