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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Sep 02. 2022

청춘,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버린

-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 김연수가 2004년 펴낸 산문집. 이 책은 작가가 서른다섯, 삼십 대 중반을 통과하던 시절에 쓴 것이다. 작가는 그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문장들을 통해 "내가 사랑한 시절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내 안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 것들, 지금 내게서 빠져 있는 것들"을 아름답게 기록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서른의 문턱에 서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는 말이 그저 남 얘기만 같던 시절. 누구에게나 빠짐없이, 살아있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 명료한 진실을 그땐 그저 한 귀로 흘려들었다. 거울을 보면 볼에 아직 어렴풋이 젖살이 남아있는데, 그 자리를 주름이 대신하는 날이 온다는 게 되려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입으로는 청춘이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노래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내심 아직 내가 푸른 봄의 테두리 안에 있음을 느끼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흔하나.

이제 입으로는 아직 청춘이라고 말을 하지만 영원할 것처럼 누리던 그 푸른 봄의 테두리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자꾸 돌아보게 된다. 지나고 보니 아름다워서, 빛나서, 눈이 부셔서. 다시는 되돌릴 수 없어서.

언젠가 오늘 역시 그리운 청춘으로 기억될 날이 올까. 꼬부랑 할머니가 된 어느 날엔가.


쓰다 보니 깨닫는다. 현실을 제대로 일구지 못한 사람의 말은 아무리 꾸며도 그저 공허하다는 것. 수려한 단어조차 천박하게 만든다. 미천한 지식을 잔뜩 치장해서 쓴 글은 우습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짧은 글이라도 점점 더 드러내기 부끄럽다. 현실의 나를 모르는 이에게만 읽히고 싶어 진다.

삶을 따뜻하고 충실하게 사는 게 먼저일 텐데. 그래서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내 부족한 말로는 모자라고 또 모자라니, 그저 추천! 한 번쯤 꼭 읽어보시길!




소중한 것들은 스쳐가는 것들이 아니다. 당장 보이지 않아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들이다. 언젠가는 그것들과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사랑은 물과 같은 것인가. 그 큰 사랑이 내리내리 아래로만 흘러간다. 그런 줄도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 집을 떠나고 어린 새들은 날개를 퍼덕여 날아가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것.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 집이 있어 아이들은 떠날 수 있고 어미 새가 있어 어린 새들은 날갯짓을 배운다.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때로 쓸쓸한 가운데 가만히 앉아 옛일을 생각해보면 떨어지는 꽃잎처럼 내 삶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어린 시절이 지나고 옛일이 그리워져 자주 돌아보는 나이가 되면 삶에 여백이 얼마나 많은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즈음 창밖을 내다보면 뭔가 지나가는 게 언뜻언뜻 눈에 보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었다.
큰 얘기에만 관심을 두던 20대가 지나고 나니 삶의 한쪽 귀퉁이에 남은 주름이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주름이나 흔적처럼 살아가다가 사라진다.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 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 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쓸데없다고 핀잔준다 해도 내 쓸모란 바로 거기에 있는 걸 어떡하나.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한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
우리 삶이란 눈 구경하기 힘든 남쪽 지방에 내리는 폭설 같은 것. 누구도 삶의 날씨를 예보하지는 못합니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청춘은 그런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가는 그 빛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나버렸다.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건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사실은 지금도 나는 뭔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여전히 나는 사춘기. 앞쪽 게르를 향해 가만-히 살핀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던 세월의 속도다.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
지금이 겨울이라면, 당신의 마음마저도 겨울이라면 그 겨울을 온전히 누리기를. 이제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삶이로구나.



- 헤아리.다;hea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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