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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Sep 05. 2022

용의자가 너무 많은 "빌라 매그놀리아"

- 와카타케 나나미,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인구 삼만오천 명의 작은 해변도시 하자키. 거기서도 조용한 해안가 언덕에 나란히 두 줄로 나란히 열 채가 세워진 "빌라 하자키 매그놀리아"의 비어있는 3호에서 신원미상의 사체가 발견된다. 당일은 태풍이 강해 외부인들이 드나들지 않았기에 범인은 주민 가운데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고, 이웃이 서로를 의심하는 가운데 또 한 번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일상 미스터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자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와카타케 나나미는 1991년 단편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으로 데뷔한 이래 쉼 없이 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적어도 일본에서는 코지 미스터리의 일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드보일드와 대립된 개념으로 생겨난 코지 미스터리는, 누군가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수사하는 탐정이 전문가가 아니며, 용의자가 작은 커뮤니티에 속해 있고, 폭력적 표현을 되도록 배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를 떠올리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출판사 【코분샤光文社】가 1959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소설 브랜드 캇파 노블즈(KAPPA NOVELS) 초판에서 작가가 설명한 코지 미스터리의 정의를 덧붙이자면, "작은 동네를 무대로 하여 누가 범인인지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폭력행위가 비교적 적고 뒷맛이 좋은 미스터리"를 일컫는다.


와카타케 나나미는 이 코지 미스터리의 마니아로 자신 역시 가공의 장소를 배경으로 블랙코미디와 미스터리로 가득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일상에 잠재된 인간의 악의를 잘 표현하는데, 마음에 침잠되어 있는 인간의 시기와 질투, 욕망, 이기심 등을 기민하게 포착해 그것을 자극적인 표현 없이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미스터리로서 가져야 할 요소, 이를테면 밀실이나 반전 등도 완성도 높게 써내는데 심지어 다작多作하시는 분. 『와카타케 나나미』 시리즈,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하자키시 시리즈』, 『노자키군 시리즈』 등의 시리즈물부터 단행본, 여행기, 앤솔로지 까지......

그렇다. 이쯤 되면 예상했겠지만 난 그녀를 사랑한다. 몇 년 안 됐지만 이미 국내에서 그녀가 펴낸 모든 책을 다 수집했다. 절판된 것은 중고로 수집했고. 나오지 않은 책은 원서로 수집 중이다. 사랑하는 작가가 책을 많이 써내서 읽어도 읽어도 아직 읽을 책이 많이 남은 건 축복이다.

감사해요, 나나미 씨. 앞으로도 많이 많이 써주세요. 읽고 또 일겠습니다, 아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와카타케 나나미를 처음 접한 건 바로 이 『하자키 시리즈』로, 절판되었다가 최근에 제목을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으로 바꿔 새로운 표지로 재출간되었다. 서두에 등장인물 23명과 빌라의 약도를 그려 설명해두었는데, 등장인물이 많은 만큼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 헷갈려 자꾸 앞장으로 돌아가 인물을 확인했다. 하지만 점차 이야기가 진행되며 개개인의 개성과 각자 품은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몰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뛰어난 속임수, 은밀한 대화, 비밀을 품은 공모, 피해자의 정체. 그리고 의외의 범인과 마지막 장까지 안심할 수 없는 반전의 반전까지.

개인적으로는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더 좋아하는데, 하무라가 이 작품에 카메오로 등장해 반가웠다. 작가님 센스가 어마어마하다. 나의 사랑 불운한 여탐정 '하무라 아키라'에 대해서는 조만간 다시 올리기로 하고. 태풍도 다가오고 걱정도 많은 요즘, 재밌는 책 속에서 시름을 잊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강추 강추 완전 강추!



고마지 반장은 일을 주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애정표현이라고 믿었다. 그는 일관되게 주위 사람을 혹사시켰다. 부하든 상사든 아내든.
“틀림없이, 타살이군요.”
시체는 양손, 양발을 마구 내뻗은 형태로 누워 있었다. 남자인 건 알겠는데 그다음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얼굴이 완전히 으깨져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얼굴이 있어야 할 부위는 진부한 표현으로 말하자면 푹 익은 석류 같았다. 자세히 보니 손도 검게 물들어 있었다. 히토쓰바시는 밥 먹기 전에 온 것을 조상님께 감사했다.
“한 번 본 것만 가지고 틀림없이, 라는 말을 쓰다니, 아마추어는 부러워.”
시체 건너편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미우라 검시관이 일어서면서 쌀쌀맞게 말했다.
"잘 들어둬요, 세상이란 곳은 말이죠. 흥미로운 얘기라면 솔깃한다고요. 이웃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싫든 좋든 우리도 휩쓸려 들어가요. 나쁜 평판은 자꾸만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거든요."
"게다가 무엇보다도 죽었으면 싶은 사람일수록 도리어 지겹도록 장수하는 법이라서 그런 말을 하면 한 만큼 상대의 수명이 늘어나지. 그래서 옛사람이 '입은 화의 근원'이라고 했네."
젊은 나이에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치켜세워져 오는 동안 그의 자존심은 먹이를 억지로 먹인 거위의 간만큼이나 비대해졌다.
아내는 분명 미인이고 서른다섯이라는 실제 나이보다 꽤 젊어 보인다. 그러나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모두 자신의 겉치장을 위해 쏟아부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그럴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만큼의 가치가, 그녀에게 있을까.
"아키라가 그러더라고. 내가 공룡같이 둔하다고. 아파도 아픔을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그 말이 맞아. 더군다나 한 번 느낀 아픔을 잊는 데도 시간이 걸려. 하지만 난 남들 이상으로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어쨌든 아픔이 있으면 그것을 분명히 느끼고 또한 그것을 분명히 잊을 수 있어.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뭐랄까, 그러니까 난 바보 같지만."
"너무 심한 말 같긴 하지만, 살인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 없듯이 자살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없는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살인이라는 거,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타이밍이 잘 맞으면, 좀 이상한 말이지만, 최악의 상태에서라면 말이야."
"그래, 나도 할 수 있겠지."


- 헤아리.;hea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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