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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Sep 13. 2022

그는 왜 자신의 귀를 잘랐는가

- 버나뎃 머피, '반 고흐의 귀 -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7년의 여정'

창작 능력이 절정에 달해 있던 화가가 왜 그렇게 잔혹한 행동을 저질렀던 것일까? 그가 그 섬뜩한 선물을 준 미스터리의 여인 '라셸'은 누구였을까? 반 고흐가 자른 것은 귓불이었을까, 아니면 귀 전체였을까?


1888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추운 겨울밤. 비극적인 삶의 주인공이자 천재 화가로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는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잘라 한 여인에게 건넨다. 오래된 기록들 사이에 파묻혀 있던 사실을 근거로, '고흐의 귀'를 매개로 고흐의 삶과 내면을 그려낸 수작 『반 고흐의 귀 -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7년의 여정』.

이 책은 저자의 첫 작품이지만, 처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완성도와 진실을 향한 저자의 집념이 여실이 드러난다. 거기에 미스터리와 같은 치밀함과 서스펜스와 같은 긴박감이 마치 소설과 같은 재미를 더한다.


저자 버나뎃 머피는 미술사를 전공하긴 했지만 미술 전문가도 아니며 고흐 연구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녀는 고흐의 작품을 몇 점 밖에 접하지 못했던, 그저 평범한 영국인 미술교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그저 고흐의 '귀 절단 사건'과 관련한 진상이 알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오랜 시간 방대한 자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

물론 비전문가에 지나지 않는 저자가 세계 유수한 전문가들의 연구로 쌓인 고흐 최대의 미스터리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하다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성실한 실증 노력과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 뛰어난 추진력이 끝내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그녀는 사건의 배경이 된 프랑스 아를의 사건 당시 주민 15,000명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관계된 서간과 논문을 전부 찾아본다. 그리하여 기존의 연구에서 근거가 약해 뒷전이 된 일화나 전설, 나아가서는 그를 둘러싼 아를의 여러 사정까지 파악한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 1890년 경의 아를의 풍경이나 공중위생의 상황 등이 상당히 세세하게 그려져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이 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물론 저자의 최대 공적은 고흐의 귀의 어느 부분을 자른 건지 지금까지 불분명했던 지점을 특정한 것이다. 저자는 사건 당시 병원에서 고흐를 직접 진료한 의사의 메모를 발견하여 실물을 책에 수록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점  하나인,  과연 그가 귀를 건넨 여인의 정체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도 그녀의 후손까지 만나 인터뷰하며 진실을 파고든다. 과연 그녀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창녀였던 걸까. 진상은 책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전설 속 존재와 같았던 고흐를 뼈와 살과 있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생생한 '사람'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책 자체의 재미도 엄청나지만, 자신의 추측에 명확한 근거를 뒷받침하여 서술함으로써 고흐의 슬프고 절절하지만 희망에 가득 찬 인생을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누구도 구원할 수 없던 고흐의 생전의 고통과, 그럼에도 놓을 수 없던 그림에의 열정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7년, 그 긴 시간의 궤적과 저자의 집념이 집대성된 걸작, 고흐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반론도 있겠지만 귀 이야기는 사실상 이 예술가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이고, 오랜 세월 반 고흐의 성격과 예술을 정의해왔다. 우리는 반 고흐의 그림을 볼 때면 그의 붓질을 해석할 때조차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반 고흐의 정신병 발작의 영향을 끌어와 함께 논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신화로 포장된 이야기이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것은 하나의 막연한 의문 - 125년 전 프로방스 후미진 곳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결정적으로 정의하게 되었는가? -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이야기 전체를 밝히기 위해 수천 시간을 쓰게 될 줄은, 혹은 그 과정에서 잘못된 실마리들을 따라가고 실망을 하고 또 황홀감을 맛보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귀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반 고흐는 태도와 행동 - 그가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낀 모든 것들 - 때문에 거듭 사람들의 비웃음을 유발했고, 그가 웃음을 터뜨릴 때는 너무나도 진솔하게 열정적으로 웃었으며 얼굴 전체가 환해지곤 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그의 삶 전반에 걸쳐 빈곤한 자들, 고통받는 자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이끌렸으며, 그들을 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반 고흐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화가인 그가 실패했다고 느꼈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그를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내 연구 대상이 아니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진짜 한 인간이 되었다.
베일리의 글에서 두 가지 사항이 내 시선을 끌었다. 테오에 따르면 빈센트는 '칼'로 귀를 잘랐지만, 이 새로운 기사는 분명하게 "면도기"라고 쓰고 있었다. 누가 옳은가, 테오인가 아니면 이 신문인가? 두 번째로, 신문기사에서는 빈센트가 자신의 귀를 "카페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준 것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그날 밤 사건을 설명하는 다른 모든 글과 대치되는 것이었다. 이 알 수 없는 여성 '라셸'은 늘 창녀로 언급되어왔다. "카페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는 이 예스러운 표현은 완곡한 어법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반 고흐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조금이라도 인정을 받은 적이 없었음에도 아를에서 만나 다른 화가들을 폄하하고 있었다. 반 고흐는 주변 그 어느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났고, 그 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반 고흐는 - 아를을 너무나 사랑했고, 모든 종교와 사회계층을 넘나들며 많은 친구를 사귀었음에도 불구하고 - 여전히, 확고하게, '우리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연구란 이런 것이다. 무시해도 좋을 하찮은 것으로 느껴지는 것을 밝혀나가는 소소한 발걸음들이 훨씬 더 큰 그림에 빛을 비추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반 고흐는 "너무나도 고상한 인물로 솔직하고 열린 마음을 가져 함께 있으면 활기가 넘치며, 약가의 악의 같은 것도 있지만 재미있고, 좋은 친구이자 거침없는 판단력의 소유자로 모든 이기심과 야심을 버린 사람이었다."



- 헤아리.다;hea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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