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려령,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중에서
이럴 땐 참 다행이에요.
속이 좁아서.
욕하는 사람들도 미운 사람들도 다 담아두지 못하는 간장 종지만 한 마음이라.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다른 사람 눈치를 정말 많이 봤어요.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그에 맞춰 행동하고
혹시 나 때문에 기분 나쁠까 전전긍긍하고
흠 잡히기 싫어서 더 바르게 착하게 보이려 노력하고.
그러면서 상대가 하는 말과 행동에 자주 아파하고
살짝 숨겨놓은 가시까지 용케 찾아 일부러 찔려 스스로에게 상처 내고
뭐라고 하지도 못하면서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그 미움을 어찌하지 못해 늦은 밤 방구석에 앉아 울기도 하고
다 모인 자리에서 화장실로 도망가 혼잣말로 중얼대기도 하고
잠 못 이루고 그 상황을 복기하며 분해하다가
혼자 싸우기도 하다가 쏘아붙이기도 하다가
결국 현실에서는 입을 꾹 닫고 바보같이 웃어 보이기만 하던 날들.
저는 사람한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아니에요.
완벽하게 혼자인 시간에야 겨우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
그 에너지를 담는 그릇조차 작아서 자주 방전이 되는 사람.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늘 제 안의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쓰는 일이지요.
만나서는 그렇게 즐겁고 신나다가도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해져서
집에 도착하면 지쳐 쓰러지고 말아요.
좋은 사람을 만나도 그런데
싫은 사람, 미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은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한창 일로도 사적으로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했던 시기에는
처진 눈이 보톡스 없이도 바짝 올라갈 정도로 날이 서 있었지요.
그 화를 어찌하지 못해
가족에게, 때로는 친구에게, 그리고 자주 저 자신을 괴롭히곤 했어요.
하지만 그건 정말 바보 같잖아요.
화를 내야 할 사람에게는 다정한 척 아무 말 못 하면서
정작 가장 아껴줘야 할 소중한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
제 가장 밑바닥에 새겨진 '못났다'라는 말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결심한 건
가능하면 힘든 사람과 마주할 일은 피할 것,
그리고 피할 수 없고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땐 반격한다! 였어요.
예전에는 상대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하면 심장이 벌렁거려서 숨도 못 쉴 것 같았거든요.
앙심을 품고 나를 더 괴롭히진 않을까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해서 큰 상처를 받으면 어쩌지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상대는 그렇게 싶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몇 번이고 고민하고 주저하다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러지 않았으면 해'라는 말을 겨우 꺼냈는데
상처는커녕 '아, 그래? 알았어'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일도 많더군요.
그래서 모두가 나 같은 건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나 혼자 고민하고 나 혼자 너무 깊게 생각하고 나 혼자 너무 앞서가고.
물론 그런 바니바니 같은 저도 좋지만
가끔 너무 견디기 힘들면 대놓고 표현하고 터뜨릴 필요도 있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더 힘들게 하면?
뭐, 그땐 나도 더 반격해 버리죠. 아니면 도망가거나.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요. ㅎㅎ
욕이라는 게 참 의미 없는 일 같아요.
당신과 나, 우린 서로 다르니까.
당신은 당신, 나는 나.
우리는 같지 않아 아름다운 인간이니까.
누군가의 모자람을 들춰내고 손가락질하기보다
포근히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그렇다면 좋겠습니다.
속이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그 안에 좋은 것들만
사랑하는 사람들만
가득 담아 보내는 매일 되시길 바랄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