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전국의 바니바니에게

- 유시민, '청춘의 독서' 중에서

by hearida

"우리가 양심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도덕적 직관은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본능이다. 이 본능은 우리에게 명령한다.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라." '평범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이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다. 만약 누군가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 모든 장애를 제거"하고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피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비범한 부류' 또는 초인超人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유시민, '청춘의 독서' 중에서



아무래도 전 비범한 사람이나 초인은 될 수 없는가 봐요.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 모든 장애를 제거"하기는커녕

선한 목적이든 악한 목적이든 피 앞에서 '즉각' 멈추고 뒷걸음치는

그저 평범하디 평범하고 작디작은 인간일 뿐이지요.


한의원이나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면 다들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는데

제가 담이 엄청 작다고 하네요.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 소리나 표정이나 상황에도 쉽게 놀라고 경계하는 타입,

그러니까 아주 예민한 토끼 같은 사람이래요.

그래서 저는 얼마 전부터 놀라거나 심장이 쿵쾅거릴만한 일 앞에서는 제 자신에게

"바니바니 힘을 내"라고 속삭인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담력이 부족해서 크게 성공하기도 힘들지만

또 크게 망하거나 사기당하기도 힘들대요.

위험을 감지하는 레이더가 아주 잘 발달되어 있어서

낌새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벌써 수백 미터 밖으로 도망가버리거든요.


뭐,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높고 넓은 세상에서 세상으로 나가 꿈을 펼치는 인간은 못 되지만

오늘 하루 발견한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고

소시민으로서 주어진 의무에 충실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비록 세상을 구할 슈퍼 히어로가 될 강한 심장은 갖지 못했지만

삐뚤어져도 기껏 화장실 변기에 앉아 혼자 중얼거리는 정도의 분노만 배출하는

짜잘한 심장을 가졌으니

적어도 저 자신과 누군가를 힘들게 할 만한 비범한 인간은 되지 못하리라 안심하게 돼요.


어쩌면 다들 고만고만한 심장으로

'사는 게 참 하찮네'

'인생 별 거 없어'

'나만 빛나지 않는 것 같아'

이런 생각하며 매일 주어진 날들을 살아낼지 모르지만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다며 인류를 궁지로 몰아넣는 대단한 인물들보다

우리의 평범한 마음이 세상에는 더 필요하다 믿어요.

그러니 바니바니 동무들,

우리 작은 심장으로 보통의 선한 길을 오늘도 잘 걸어봐요!

많이 추운 날, 몸도 마음도 감기 조심하시구요^^


Barcelona, Spain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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