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마음이 찌그러졌어요

-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에서

by hearida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특정한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도 아닌, 그냥 어떤 순간을 지나가는 길이 고단해서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울다가 문득, 말 못 하는 아이도 그래서 우는 건가 싶어졌다. 울음이 언어가 되는 시기. 어른이 되어도 눈물로, 우는 일로만 속엣것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지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시기와 이 상태를 아이와 엄마가 자라는 때라고 하겠지. 경주도 눈물을 닦고 잠이 들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게 될 것이었다. 인생을 산다는 게 그 접힌 페이지를 펴고 접힌 말들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라는 걸,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여도 모든 것을 같이 나눌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 하루하루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다 가끔 같이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에서



아이가 벌써 여섯 살이 되었어요.

자그마한 입을 오물거리며 품에서 잠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이제 정말 고 앙증맞은 입과 엉성한 발음으로 못하는 말이 없네요.


같이 놀다가 의견이 다르면 "알겠는데, 그냥 내 방식대로 해주면 안 될까?"

열이 나는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주면 "내가 아가였을 때부터 엄마는 내 최고의 간호사야"

신나게 노는데 이제 집에 가자 하면 "오 마이갓, 어이가 없네"


정말 상상도 못 한 말들이 그 작은 머리와 세계에서 마구 튀어나오는데 너무 놀랍고 귀엽고...

매번 무지개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는 기분이에요.


이렇게 예쁜 아이지만 가끔은 혼을 내야 할 때가 있어요.

며칠 전에도 장난을 치길래 그러면 안 된다고 한소리 했거든요.

토라진 아이와 서로 등을 돌리고 대치하고 있던 와중에 아이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 때문에 내 마음이 찌그러졌어."

제 딴에는 많이 속상했는지 눈물까지 또르륵 흘리는 거예요.


통통하고 보드라운 속살 아래 숨은 아이의 마음이

왠지 뽀얗고 동글동글한 찹쌀떡같이 생겼을 것만 같은데

그런 마음이 찌그러졌다니..

제가 아주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아 아이를 품에 꼭 안아줬답니다.


아이가 크면서 마음이 찌그러지는 순간을 얼마나 많이 마주하게 될까요.

찌그러지기만 할까요.

때로는 찢기고 밟히고 조각나고 부서지는 날들은 또 얼마나 많을지.

먼 훗날 제가 모르는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울지는 않을지.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쿵 내려앉아요.

모든 아픔을 막을 순 없지만 적어도 내 품에서 쉬어주기라도 했으면.

내가 오래 아이의 쉴 곳이 될 수 있다면.

요즘은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한때는 마음이 고체라고 생각했어요.

부서져버린 조각들을 다시 붙일 수 없고

닳고 닳다 보면 모두 다 잃어버리는 것이라 여겼는데.

요즘은 마음이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찌르고 때리고 떨어뜨려도 잠시 출렁거릴 수는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모양을 다시 회복하는 물 같은 마음.


아이가 그런 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해요.

어제의 찌그러진 마음 따윈 잊고

지나온 길은 뒤로 하고

유유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나아갔으면.

삶의 세세한 순간들을 전부 나눌 수는 없겠지만

제 길을 흐르다 때로 큰 바다에서 만나 우리 함께 괜찮은 시간을 보냈으면.


당신의 하루가 힘들어 마음이 찌그러지는 일이 있더라도

물처럼 잠시 일렁이다 곧 잔잔해지기를.

그리고 하루가 끝날 때 즈음엔 다 잊고

이불속에 다리를 쭉 피듯 마음도 쭉 피고 편한 잠에 들기를.


Trogir, Croatia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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