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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ndon Chung Oct 05. 2015

브랜든 중국 사업 진출기 2.

난 어떻게 투자를 받았을까?

 2006년 연말부터 두 남자의 광저우에서의 분투기는 나름 눈물겹다... 만, 그런건 뭐 누구나 하는 고생이니까 그냥 간단히 적어보겠다.  

 방 두개에 자그마한 거실에서 몇몇 중국 친구들 데려다 놓고  MMORPG를 개발하면서 그 친구들의 친구들의 친구들까지 샅샅이 조사해서 돈 좀 가진 친구들이 있으면 후원이라도 받고자 안간힘을 쓰면서 몇 개월간의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 둘이 쓰기로 한 자금은 대출 받아 들고온 2000만원으로 정해뒀는데, 사실 거의 절반은 내 월급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다른 한 명의 파트너와 중국 친구들의 급여로 지급하면서 버텨갔다.

 그렇게 3개월 정도 3D 쿼터뷰 MMORPG를 겜브리오 엔진을 이용하여 개발하고, 투자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방법이 없으니, 나름 인연이 길었던 중국 스탭의 친구 중에서 투자를 주업으로 한다는 사람부터 만나기 시작. 파트너와 나는 나름대로 회사 운영을 2~3년 이상 해왔던 경험이 있었음에도, 투자 유치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도, 방법도, 계획도 없었다.

 그냥 다짜고짜 만나서, '이 게임에 투자하세요. 그럼 투자한 금액의 몇 배를 벌어드릴 꺼에요.'..... 

 지분 투자인지, PF 방식을 원하는지, 얼마의 투자금을 희망하는지, 어느 정도의 매출을 예상하는지, 수익 모델은 무엇인지 등등.... 전혀 투자자와 커뮤니케이션 할 준비도 없이 생존을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단지, 이번에는 그 이전과 다르게 파트너와 함께 '힘든 상황에서도 절대 악수는 두지 말자' 라는 합의였다. 즉, 부족한 상황이라도 확실히 오픈 마인드로, 어떠한 기회가 되었던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비전을 보고 선택하자는 의지였다.


 요즘 흔한 말로 그렇게 죽음의 계곡을 지나가고 있을 무렵, 지인의 먼~ 지인이 항저우에서 큰 회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중국내에서 이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처음 항저우에 발을 딛게 되는데, 나중에 듣게 된 얘기지만 이렇게 만나게 된 '쭝난 그룹'의 대표는 중국 팀원의 가족의 꽌시의 꽌시를 총 동원에서 겨우 매칭이 된 케이스 였다고...


 그렇게 항저우 최고의 건설사 회장을 만난 후, 비서에게 게임에 대해서 PT를 하면서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다시 광저우로 왔지만, 그 이후 어떻게 팔로업을 해야 할 지 알지 못하던 우리는, 그냥 무작정 기다리기로 한다. 

 죽음의 계곡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사실 정말 최악의 악수였다.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을 기다리던 우리는, 일단 내가 먼저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투자자를 알아보기로 하고 먼저 귀국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했었다. 과연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진정으로 내가 원했던 것인지...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절벽 끝에 선 느낌. 그냥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 퇴로가 않보였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그런 당혹스러움으로 여기저기 지인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아무런 답도 얻을 수 없었고 더 복잡해져가는 심정으로 무너져 갈 무렵....


 광저우에 남아있던 파트너로부터 연락이 왔다. 항저우의 다른 기업에서 협력을 하고 싶다는 소식. 나는 지체없이 그 사람들과 만나서 무조건 빌붙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날아갔고, 그렇게 지금의 중국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나의 생존을 위한 분투는 끝을 맺었다. 


 우리 팀원들은 모두 Growth 라는 회사를 중국 파트너와 함께 새로 설립하고, 완구를 접목한 MMORPG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모든 조건은 훌륭했고, 우리는 열정이 넘쳤지만, 1년의 개발을 마무리 지으며, 여전히 또 하나의 계곡을 만났다.

 해당 회사의 스탭들이 모두 게임 개발에는 베테랑이었지만, 서비스나 마케팅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인력이나 네트웍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있었고 그렇게 자체 서비스를 시작하여 게임과 완구를 접목한 최초의 MMORPG를 알리기 위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마케팅을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크게 배운것은 '중국은 넓다' 라는 것. 물론, 마케팅에서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중국은 그 물리적인 공간의 크기만큼, 어느 정도 돌덩어리를 던지는 것으로는 제대로 파도를 일으킬 수도 없는 바다 같은 곳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 이전과 다르게 확실한 스폰서가 있는 상태에서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면서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하면서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여유를 준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중국 파트너와 함께 제대로 된 게임 사업을 하기 위해서 2009년 7월, 넷미고를 설립하면서 안정적인 둥지를 벗어나 모험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뭐, 아마 예상할 수 있듯, 우리는 또 다른 계곡으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중국 파트너( 현재 넷미고 대표 )의 지인을 통해서 엔젤투자를 받고( 전혀 게임에 대한 PT도 없이 그냥..... ) 또 게임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참, 개버릇 남 못준다.


 나는 여전히 회사 경영같은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발에만 집중했고, 1년여간은 회사에서 침낭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파트너사와 계약한 캐쥬얼 게임의 개발과 MMORPG를 개발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회사 대표를 통해서 차츰 '자본시장'의 흐름과 그들만의 세계에서 노는 방법을 조금씩 익힐 때 쯤, 역시 마찬가지로 죽음의 계곡이 다가왔다.


 분명히 얘기하지만..... 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자금 운영에 대해서는 굉장히 타이트하게 운영하는 편이었다. 심지어 식대나 회식비용, 직원들의 4대보험까지 완벽하게 파악해서 대응하고, 세무회계 역시 상고 출신이다보니 모두 직접 꼼꼼하게 챙기는 그런 욕먹는 오너였지만..... 결국은 '매출을 창출하지 못하는' 오너는 그냥 시한부 인생일 뿐이다.


우리는 2년여만에 자금 위기에 봉착했고, 다시 투자 받기 미션을 시작!~~~~


그나마 그 이전과 달라진 상황이라면, 조금이나마 투자자의 성향과 그들의 플레이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했었다는 것이다.


나는 전혀 다른 방식의 준비를 시작했다. 


 넷미고만의 분명한 비지니스 모델, 예측 가능한 매출 데이터의 구체화, 투자 방식에 대한 세심한 배려, 투자금 회수에 대한 투명한 통로를 준비하고, 최대한 몸은 낮추되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는 우리만의 장점에 집중했다.

 그리고 투자를 받았다!!!!!!!!!!!!!!!!!!!!!!!!!!!!!!!!!!!!!


 물론, 투자를 받게 된 주된 요인은 내가 준비한 이런거는 아주 미미한 역할을 미쳤을 뿐..... 주된 역할은 모두 중국 파트너의 인맥에 의해서 였다. 


 그렇게, 우리는 50억원 수준의 투자를 받게 되고, 안정적인 사업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내가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서는 파트너(꽌시), 즉, 사람을 잘 만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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