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산책

비세 마을 후쿠키 숲길

by headache

나를 온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살지 못하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누구로 살아가게 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직장 동료로서, 그 누구의 누구로서 나는 이래야만 하지 않을까 또는 이래야만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게 살아가려 했다. 그 기준은 나 스스로가 만든 것이지만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예민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바를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스스로 그들의 요구보다 더 높은 나의 기준을 만들었다. 나는 참 좋은 누구의 누구가 되고 싶었으므로. 그렇다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누구로 살아왔던 모든 순간이 모조리 나쁘거나 힘들거나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나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이 내 인생을 아름답게 반짝이게 했던 시간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관계에서 얻어지는 타이틀이 많아지면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줄어든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는 일에 여유가 없다. 오로지 나의 감정에만 집중하고 또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헐거워지는 시간이 그립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가 어렵다. 아이들이 더 크면 가능할까? 나 혼자 여행을 떠나 와 내가 떠나온 곳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들이 더 애틋해 질까?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궁금함이 늘어난다.


재작년 가족과 함께 떠난 오키나와 여행.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비세 마을의 후쿠키 나무길이었다. 두 밤을 보냈던 비세마을은 우리 시골 마을처럼 바닷가의 작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그 마을을 태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심어 놓은 후쿠키 나무가 이제는 큰 숲이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비세마을의 작은 집에 두고 혼자서 그 숲길을 아침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걸었다. 피부가 새카만 아이들의 웃음과 마당을 쓰는 여인과 개와 고양이를 만났다. 아직도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 전의 푸르스름한 하늘에서 반짝이던 별들을 보면서 처음부터 이 곳에 살고 있던 사람처럼 장을 봐 밥을 해 먹으며 며칠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에 드는 곳에 가면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장을 보고 밥을 해 먹으며 산책을 하는 그런 일상을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고. 그 일상에는 누구의 누구로서의 나는 없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보내는 시간만 있다.

비세 마을의 골목길은 숲이다. 후쿠키 나무가 담이고 그 나무 사이에 골목길이 있다. 그 골목에 고양이가 많다.
우리의 시골집과 닮은 비세 마을의 작은 집들.


그 작은 집 마당에는 우리의 감나무처럼 바나나 나무가 높이 자란다.


비세 마을의 집 앞에는 무서운 도깨비처럼 생긴, 집을 지키는 수호상이 있는데 이 집에는 이런 요정의 얼굴이 있다. 귀엽다.

이상한 나라로 향하는 통로를 지나는 듯 후쿠키 나무 길을 지나가면 산호 조각이 하얗게 쌓여있는 비세 해변이 나온다. 오후의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지는 해변에서 투명하게 반짝이는 바다를 만난다.


나는 혼자 온 여행인 듯 새삼스럽게 설렌다.

신발을 벗고 투명한 바다에 발을 담근다.

나는 무엇에든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햇살 한 줄기,

그림자 한 조각,

나뭇잎 하나,

두고 온 일상에서는 그저 지나쳤든 모든 것들이

궁금하고,

낯설고,

즐겁다.

무엇보다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나를 느끼는 것이 가장 즐겁다.

일상과 다른 밀도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를 느낄 수 있어서

나는 이곳에서 행복하다.





비세 해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 맨발로 걸어 바다를 건너면 앞에 보이는 이에 섬에 금방 도착할 듯 바다는 평화롭고 햇살은 부드럽다. 나는 또 후쿠키 나무 사이 골목길에서 웃음을 쏟아내는 아이들을 지나 내 아이들 곁으로 간다. 함께 그러나 또 따로 흐르는 우리의 여행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