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망한 여행기

방콕 지하철의 화장실 문은 군인이 열어준다

by headache

지난 겨울 가족들은 두고 친구와 단둘이 방콕에 갔다. 함께 떠나는 사람이 가족이 아닌 여행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준비를 오래 했다. 일 년 전에 계획하고, 목적지를 한 번 바꾸고, 돈을 모으고, 그냥 가지 말까? 한 번 뒤집어질 뻔도 하고,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


떠나기 두 어 달 전에 남편에게 방콕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환하게 웃으며 "우리 걱정은 조금도 말고 재밌게 지내다 와"라는 반응을 기대했던 내게 남편은 약간 서운한 듯 "어떻게 혼자 갈 생각을 했어?"라고 하여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설렘을 느끼기도 전에 눈치부터 보고 있었다. 방콕으로 떠나기 전 식구들끼리 갔던 강원도 스키 리조트에서 돌아와 두들겨 맞은 듯 근육통이 심했다. 사십이 넘어 처음 배운 스키 타기가 태어나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근육까지 찾아내 온몸을 모조리 들쑤셔 놓았는지 욱신거리지 않은 데가 없었지만, 남편을 기쁘게 할 요량으로 집안 청소를 했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을 싫어하기보다 무서워하고, 청결한 것을 무척 좋아하는 남편은 내가 청소를 하면 몹시 좋아한다.) 거실에 있던 컴퓨터를 정리해 책방으로 옮겨 더 이상 필요 없는 책을 처분하고, 냉장고를 청소해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 일정을 요일별로 정리해놓은 표를 출력해 냉장고 앞에 붙이고, 베란다를 치웠다. 이 정도면 내가 없는 3박 5일 동안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짐작하면서 정작 나의 여행 가방은 허술하게 챙겨 떠난 방콕 여행. 저녁을 대신해 공항에서 간단한 안주에 맥주를 마시고, 기내에서 친구와 우리의 여행을 자축하며 제주항공의 깜찍한 치맥세트까지 먹었지만 여섯 시간의 밤 비행기는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을 만큼 피곤했다. 방콕 여행은 그렇게 피곤함과 함께 시작되었다.


새벽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자고 처음으로 방콕에서 맞이한 아침. 건기의 방콕은 희뿌연 느낌이었다. 나무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듯 선명하지 않았고, 하늘은 채도가 낮은 탁한 파란색이었다. 첫날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짐 톤슨 박물관에서 오전을 보내고, 떠나기 전 신청한 투어를 통해 아유타야에 갔다. 아유타야 유적지는 사람의 손 때를 많이 타서 닳고 닳은 듯한 느낌이었만, 모든 것에 공평하게 내려앉는 저무는 햇살에 굴곡의 오랜 역사가 평화롭게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북적이는 야시장 달랏 롯 빠이에서 적당히 취해 돌아와 다른 사람이 청소해 놓은 깨끗한 호텔방에서 잠을 잤다.


문제는 둘째 날부터였다. 담누억 수상 시장과 매끌렁 기찻길 시장 투어를 오전에 가기 위해 호텔 조식을 먹고, 붐비는 방콕 지하철로 바삐 가는 길에 나의 원피스 앞 단추가 떨어져 오토바이가 쌩쌩 지나가는 찻길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정말 황당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한 손이 원피스 앞 섭을 감싸 쥐고 있느라 몹시 자유롭지 못한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담누억 수상시장은 내가 상상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담누억 수상시장이 우리의 자갈치 시장이나 죽도 시장처럼 현지인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뗄 수 없는 필수적인 공간을 살짝 가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내가 간 담누억 수상시장은 배를 타고 관광 기념품 가게를 도는 게 전부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는, 오직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가게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더러운 물이었다. 배를 타고 가는데 더러운 오수가 수로로 떨어지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그리고 앞 배가 갑자기 출발하기라도 하여 물살이 거세지면 그 더러운 물이 내게 덮쳐왔다. 망연자실하여 더러운 물을 닦아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사람 많은 곳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매끌렁 기차 시장은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기차가 오기를 선로 가까이에서 무질서하게 기다리는데, 그것도 너무 위험하게 느껴져 나는 한 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나서서야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콕에 돌아와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씨암 파라곤 쇼핑몰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점심이 문제였을까? 나는 그날 저녁 카오산로드 옆 람부뜨리 거리에서 차가운 칵테일을 마시고, 엄청 센 발마사지를 받고, 짜오프라야강을 가로지르는 수상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속이 몹시 좋지 않았다. 다행히 무사히 지하철 역에 도착하여 화장실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화장실을 찾을 수 없었다. 역무원에게 화장실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그 역에 있는 군인에게 무전을 쳤다. 잠시 후 군인이 와 나에게 따라오라고 하는 곳으로 가니 굳게 닫힌 철문이 나타났다. 그 철문을 열쇠로 열고 그가 앞장서 가는 곳은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었다. 여러 시설물의 배관이 보이고 정말 이 곳을 지나면 화장실이 나오는 게 맞는지 불확신 속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 친구는 나와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그녀가 밖에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나 혼자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몹시 불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방콕에서는 모든 지하철 역에 군인이 있었고, 심지어 쇼핑몰을 비롯한 모든 큰 건물에 우리의 경찰처럼 군인이 있어 사회 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 일 없이 화장실을 잘 쓰고 무사히 그곳을 나왔지만,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정말 괴로웠다. 부글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낯선 군인을 따라 지하의 불안한 곳으로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창피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그 밤 나는 토하고 설사하고 누적된 몸살기까지 몰려와 밤새 괴로웠고, 같이 온 친구에게 미안했다. 다음 날 우리가 계획한 일정을 함께 할 자신도 없이 몸이 늘어지고 쳐졌다. 체력만큼은 늘 자신 있었는데 이렇게 아파서 여행을 망친다는 생각을 하니 속상했다. 그래서 설사약, 소화제, 타이레놀을 마구 먹었다. 약기운 때문이었는지 다행히 다음 날 아침에는 몸살기만 있고 탈이난 배는 진정되는 듯하여 움직일 수 있었다. 더 다행이었던 것은 마지막 날은 오전에 서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우리 나름의 자유여행이어서, 나 때문에 함께 온 친구가 자신의 여행을 즐기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던 나는 조금 안심하였다. 그리하여 마지막 날 친구는 쿠킹클래스로 가고 나는 타이레놀을 챙겨 먹고 짜오프라야 강을 가로지르는 수상버스를 타고 왕궁을 보러 갔다. 왕궁의 모든 주요 장소에 군인들이 있었다. 이제 나는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돌아오는 새벽 비행기 안에서 만신창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김해공항의 차가운 새벽 겨울이 반갑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몸이 아팠던 것도 방콕 여행이 불편했던 가장 큰 이유였지만, 제주도 여행으로 치자면 뻔한 관광지를 일정으로 잡고서, 올레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감동을 기대한 나의 치밀하지 못한 여행 계획도 치명적 실수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콕 여행의 좋았던 기억은 왓 아룬의 아름다움과 BACC의 방콕 아트 비엔날레에서 만난 히잡을 쓴 여인들 초상화였다. 그 초상화 앞에서 여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슬픔과 애잔함이 느껴졌다. 불교 국가 태국에서 사회적 비주류인 이슬람인들, 그중에서도 여성. 그들의 흐릿하게 번지는 초상화 앞에서 급한 생리적 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방인으로서 여자로서 낯선 군인 앞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어젯밤 내가 생각났다.


여행을 마치고 막 돌아온 직후에는 다시는 방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시 태국을 간다면 방콕이 아니라 다른 곳을 가고 싶었다. 지금은 글쎄다. 다시 간다면 제주의 올레길을 걷듯 방콕에 나만의 올레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막 내키지는 않는다. 아직도.


방콕의 밤은 기억나지 않는다. 카오산 로드를 즐기기에 나는 이미 너무 늙었나 보다.

목 잘린 불상과 얼굴만 남은 불상, 그리고 스러진 탑. 아유타야 유적지에서 만난 오랜 역사 속 전쟁과 쉼 없이 흐르는 시간.


BACC 방콕 아트 비엔날레. 작가는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거칠게 수놓았다. 남성 작가였다면 쉽게 생각지 못 했을 방법이라고 느꼈다. 이 그림들 앞에 오래 서 있었다.



타이레놀을 먹고 겨우 앉아 있을 수 있었던 창추이. 둘러볼 기운이 없어 카메라 카페에 앉아 엽서를 썼다. 부칠 수 없어 엽서를 그곳에 두고 왔다. 내 마음이 아직 그곳에 남아있을까?


짜오프라야강. 탁한 물결이 일렁거리는 그곳을 많은 사람들을 태운 배가 오늘도 수 없이 지나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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