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어
햇살 가득 쏟아지는 위로, 하라지리 폭포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 자동차를 빌려 근처 다자이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아~이제 여행이 시작되었구나 라는 설렘을 가득 안고 숙소가 있는 오이타현 다케타시 코바루 라는 동네로 향했다. 도착하는데 3시간 정도 걸리는 꽤 먼 거리였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 달린 후 빠져나오니 산길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길이 온통 눈으로 얼어붙어 있어 무척 미끄러웠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나는 괜히 여기로 여행 계획을 잡았나 싶은 자책감으로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의 실루엣이 보였고 차가운 겨울 밤하늘에는 흩뿌려진 얼음 알갱이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있었다. 푸른 어둠 속의 촘촘한 반짝임. 길도 하늘도 모두 그렇게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나와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속상하고, 다른 차들과 부딪혀 사고가 나지 않을까, 차가 미끄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어서 그 길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드디어 산을 내려오니 작은 동네가 보였다. 이제는 숙소로 가는 것만 남았나 싶었으나 내비게이션이 가라고 하는 길을 따라가니 끝이 없는 숲 길이 나온다. 숲 속에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길이 절벽을 따라 심하게 경사져 짙은 적막과 어둠 속에 계속되고 있었다. 지나가는 자동차 한 대 없이 정말 여기가 맞는지, 이 길을 따라가면 정녕 사람 사는 곳이 나오는지, 계속되는 회의감 속에 이 고생을 하려고 돈을 써가며 아이들을 데리고 왔나 절망적이었다. "아빠 무서워요. 호랑이가 나올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며 여덟 살 막내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고,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깊고 캄캄한 숲에 갇힌 듯한 공포를 경험하며 가파른 경사의 산을 폭이 좁은 지그재그 길로 내려오니 구글 지도에서 보았던 숙소가 나왔다. 그러나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예약한 숙소는 울고 싶은 나의 뺨을 때리듯 참담했다.
다른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추위는 예상 밖이었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여관 같은 민숙을 해 오던 집인데 요즘은 다다미방 하나만 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다미 방이 너무 추웠다. 낡은 기름난로가 하나 있었는데 첫날은 그 난로의 사용법을 몰라서 겨울 캠핑의 텐트 안보다 더 추위를 느끼며 잤다. 다음 날부터는 최대 세 시간으로 맞춰진 타이머를 자다 깨 일어나 다시 셋팅하면서 피곤한 밤을 보냈다. 이 민숙을 예약한 가장 큰 이유는 일본 전통 가정식 아침밥이 저렴한 숙박료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날은 늦게 도착할 것 같아서 저녁도 예약을 했었다. 그랬더니 코스별로 예쁘고 맛있는 요리가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겠지만 그런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서로 눈을 마주 치치 않고 맥주를 각자 자신의 잔에 따라 마셨고, 아이들은 조용한 식사를 했다.
추운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소박하지만 정갈한 아침상을 물리고 하라지리 폭포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뭔가에 화가 난 마음이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누군가 우리에게 한 광주리 햇살을 부셔놓는 듯 온몸으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밤새 냉랭했던 몸을 데웠다. 기분이 점점 좋아지고 그 모든 것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쏟아지는 햇살을 등으로 맞으며 낮고 시원한 물소리가 흐르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펼쳐진 작은 폭포. 눈부시게 울려 퍼지는 물소리와 햇살에 반짝이는 물방울 그리고 그 물방울에 걸리는 무지개. 아이들은 다시 토끼처럼 깡총거리며 뛰어다니고, 나는 연신 사진을 찍고, 남편은 말이 많아졌다. 이 햇살 아래 동글동글한 물소리를 들으며, 도시락을 가져와 돗자리 깔고 한나절 소풍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이곳에서 우리의 즐거운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이 곳에서 참 많이 위로받았다.
불운을 매달아 놓고 간 사람들, 기도하고 위로받는 마음
-에필로그-
역시 인간은 환경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존재였다. 코끝이 시린 첫 날밤을 보내고 이 곳은 추운 곳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여행을 어떻게든 즐거운 기억으로 마무리하려는 노력으로 그곳의 좋은 것들을 찾으려 했다. 그제야 추위에 가려졌던 다른 좋은 것들이 보였다. 몇 시에 밥을 먹을지 미리 물어서 아침마다 우리의 시간에 맞추어 나오는 정갈한 일본 가정식과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히노끼 욕조에 가득 목욕물을 받아 주었던 주인의 친절함. 대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고 우리가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는 게 많이 느껴졌다. 그리고 단단한 나무로 튼튼하게 지어진 민숙의 가장 아랫방에서 맥주 마시며 장난치며 그렇게 사흘 밤을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