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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Jul 06. 2020

홈메이드 짬뽕의 2% 부족한 맛

귀찮아서 그랬어, 그렇지만 미안하지 않아

요즘 마트에 가면 물 좋은 오징어가 자주 보인다. 가격도 착하다. 만 원에 크기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오징어를 마리 살 수 있다. 남편이 없는 저녁 식탁에 두 마리를 데쳐서 초고추장을 곁들인 숙회로 아이들의 저녁상을 차리고 남은 두 마리를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날씨도 적당히 흐리고 짬뽕 먹기 좋은 날씨다. 냉장고 야채 통에 대패삼겹살 숙주볶음을 할 요량으로 사놓은 숙주가 한 봉지 있다. 양배추가 없다는 아쉬움을 숙주로 달래면서 먼저 숙주를 삶을 물을 불에 올리고 전자레인지로 해동한 오징어를 손질하여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채반에 받혀둔다. 대파 두 개를 꺼내 하나는 다섯 등분 해 세로로 길게 자르고 나머지 하나는 작은 동그라미로 쫑쫑쫑 썰어놓고, 당근을 굵게 채치고, 양파도 굻게 채치고, 애호박은 큼직하게 반달 모양으로 자른다. 청양고추도 두 개 꺼내 어슷하게 썰어놓고 끓는 물에 숙주를 데쳐내 찬 물에 헹궈 채반에 받혀 물기를 내린다. 모든 재료가 준비되면 움푹한 팬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르고 동그라미 쫑쫑쫑 파와 다진 마늘을 크게 한 숟가락 넣어 향을 내고, 고춧가루를 너무 맵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넉넉히 넣어 기름에 빨간 물이 들면 대패삼겹살 한 주먹과 준비해 둔 오징어를 넣고 볶는다. 좋은 냄새를 풍기면서 지글거리는 팬에 당근, 양파, 애호박을 넣고 볶다가 채소의 숨이 죽으면 삶아 둔 숙주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을 때까지 두고, 냄비에 면을 삶을 물을 받아 불에 올린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진간장과 굴소스로 간을 하고 후추를 뿌린다. 간을 보고 여전히 모자란 간은 굵은소금으로 마무리하고 길게 썰어놓은 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불을 제일 약하게 줄인다. 끓고 있는 물에 라면사리 다섯 봉지를 뜯어 삶아 내 그릇에 나누어 담는다. 면이 담긴 개의 그릇에 짙은 빨강으로 보글거리는 국물을 먼저 담고 건더기를 위에 올려서 토요일 점심 우리 식구 짬뽕 네 그릇을 완성한다.


"어때? 맛이 괜찮아?"

"국물의 감칠맛이 약간 부족한대요."

가차없는 입맛을 가진 큰 아이의 대답에 나는 섭섭하지 않다. 이미 예상한 바이다.

"그래? 역시 짬뽕은 명품관에서 시켜먹는 걸로."

나도 개의치 않고 쿨하게 넘어간다.


나도 처음 한 입 먹고 '역시 면에 간이 배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오늘은 짬뽕을 만들면서 두 가지를 빠뜨렸다. 국물로 쓰는 물을 그냥 맹물이 아니라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우려낸 밑국물을 넣었어야 했고, 밀가루로 직접 면을 만드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삶아낸 면을 국물에 여러 번 토렴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아침에 뚝배기에 보글거리는 콩나물 국밥을 네 그릇 만드느라 밑국물을 다 써버렸다. 다시 만들기가 귀찮았다. 그랬다. 나는 귀찮았다. 귀찮아서 면도 토렴 하지 않고 그냥 국물을 여러 번에 걸쳐서 위에 부었는데 역시나 맛이 푹 배지 않았다. 물론 표고버섯 다시마 밑국물을 넣고 토렴을 여러 번 했다 한들 중국집에서 배달해 먹는 짬뽕과 같은 맛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아들이 국물의 감칠맛 타령을 할 때 "엄마가 만든 짬뽕은 비교적 엠에스쥐 프리한 건강한 짬뽕이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야"라고 어깨를 으쓱하며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 네 말이 맞다. 그걸 또 귀신같이 알아내는구나'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면박을 주면서 짬뽕 한 그릇을 비워냈다.   


귀찮음을 극복하고 밑국물을 만들고 뜨거운 국물에 여러 번 면을 토렴을 했어야 했겠지만 나는 요즘 막 애써서 무엇을 하지 않는다. 나는 좀 지치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내가 귀찮음을 극복하지 않은 이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유, 매일매일이 생기를 잃고 지는 이유, 운동을 쉬고 있는 이유, 계획을 세워서 애쓰지 않는 이유. 그 모든 이유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고. 7월이 시작되었지만 올 해는 캠핑을 한 번도 가지 못했고, 제주에 가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지만 여행을 계획했다 포기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그 모든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고. 반짝거리며 행복한 웃음을 웃을 수가 없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쌓여가는 감정의 찌꺼기 같은 것들을 숲으로 가서 여행을 가서 털어버리고 와야 하는데 못 본 체하며 또 하루를 살아가는 답답한 느낌은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격을 가진 무엇이었다면 내 이 문장을 읽고 "웃기시네. 어디다 대고 핑계를 대고 있는 거야?"라고 하겠지. 그러나 "네가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다는 건 사실이야".   


이렇게 마음이 지치는 가운데 뭐라도 붙잡고 싶어서 지난달부터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왕초보도 혼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이탈리아어 책을 주문하고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필통을 열어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 놓고 배운 내용을 정리할 노트와 색연필과 형광펜도 샀다. 아이들이 아닌 나를 위해 학용품을 사면서 무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역시나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 한다. 설레어서 한참 열심이었다. 이탈리아어의 "이"자도 모르던 내가 이탈리아어 명사의 성수 변화를 무난히 통과하고, 복잡한 관사의 고비를 넘기고, 동사의 격변화에서 주춤하며 다시 게을러지고 있다. 그러다 어제 틸다 스윈튼 주연의 영화 "아이엠러브"를 봤다. 밀라노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엠마가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남편에게 "Io amo Antonio.(나는 안토니오를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전체적인 영화 내용에 실망하던 차에 성당 안에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울리는 그 문장을 내가 똑똑히 알아듣다니 갑자기 너무 신나고 나 자신이 무척 대견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Io odio il mio marito. (나는 남편을 미워한다)"이지 않을까 이탈리아어 문장을 만들어 봤다. 그러나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싶지 않다.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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