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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Jul 07. 2020

화이팅님께 드리는 댓글

달지 못한 댓글을 갈음하기 위해 급하게 찍어 올리는 떡볶이 & 강정

화이팅님께.

오늘 저녁 저는 두 아이를 위해서 떡볶이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남편이 야간근무를 하는 날이라 저녁 식탁에는 두 아이만 앉아요. 얼마 전에 저희 집 근처에 있는, 제가 늘 장을 보러 가는 마트에 즉석요리 코너가 생겼답니다. 막 튀겨낸 새우튀김, 훈제오리, 닭강정, 닭다리 튀김이 한 팩에 만 원 안 팍의 가격으로 얌전히 진열되어 "어때요? 어서 저를 담아가세요. 아직도 집에서 튀기고 볶고 있나요? 이 한 팩으로 그 모든 수고로움을 덜어내고 근사한 저녁상을 차릴 수 있어요"라며 저를 유혹하고 있어요. 사춘기를 지난 큰 아이는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 되었고, 저는 음식을 할 때는 늘 '그 아이가 얼마나 먹을까?' 그것부터 생각해요. 그 아이의 먹성을 따라잡기에는 떡볶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김밥을 두 줄 사 갈까?'생각하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오후의 더운 습기 속에서 김밥집까지 걸어가기가 살짝 귀찮아졌어요. 마트에 간 김에, '게다가 비싸지도 않은 가격의 맛있는 음식을 사는 게 뭐가 어때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조금 고민하는 척하다 새우 닭고기 순살 강정 한 팩을 냉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국물용 멸치와 냉동실에 얼려둔 파뿌리와 양파껍질, 말린 표고버섯을 넣고 한 솥 가득 끓여낸 밑국물을 넣고 고추장 베이스에 떡과 어묵, 당근, 양파, 대파를 졸여낸 떢복이로 상을 차렸습니다. 떡볶이와 강정의 조합은 역시나 간이 너무 센 것 같네요. 그런데 '퇴근 이후의 피곤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김밥을 사러 갔어야 했는데......' 하고 자책하는 엄마와는 달리 정작 아이들은 맛있다면서 잘 먹어요. 역시 아이들에게는 엄마표 음식보다는 강한 자극의 음식이 더 먹히네요. 잘 먹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가공식품을 먹이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조금은 맥이 빠지기도 합니다.


"화이팅님께"라고 이름을 부르고는 너무 제 이야기로 글의 처음이 길었네요. 멋쩍었나 봅니다. 너무나 들려주고 싶어서 한 걸음에 달려왔으면서 막상 연인의 얼굴 앞에서 주저하는 고백처럼 저도 수줍었나 봅니다.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화이팅님의 댓글이 저에게 큰 힘이 되고, 저 역시 화이팅님의 댓글에 위로받고 있다고요. 제 "글을 읽을 때마다 아껴둔 간식 혼자 몰래 먹는 느낌이" 든다는 화이팅님의 댓글을 직장에서 읽고 감동해서 한 참 동안 행복해 저 혼자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듯 앉아 있었어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느낌에 이렇게 멋지게 공감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저의 글에 대한 댓글에 어떤 감사도 원망도 표현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제 글을 읽고 드문 드문 달아주시는 댓글에 늘 감사했습니다. 제가 쓴 글이 뭐라고, 대단한 작가도 뭣도 아닌 제가 가끔씩 제 감정을 충동적으로 끄적거리는 것에 때로 공감해 주시고, 때로 격려해 주시고, 때로 당신들의 느낌을 진솔하게 말씀해 주시는 댓글에 늘 마음이 쓰여 그 글들을 몇 번씩 읽어보곤 했습니다. 저는 제가 게으른 사람이라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너무 게으를뿐더러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스스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제가 사람들의 살아감에 대한 이야기를 감히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저의 개인적인 느낌을 적어놓은 브런치 글에 공감해주시는 댓글과 "좋아요"를 보면서 제가 아주 조금은 이해받고 있는 것 같아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을 읽는 분들 역시 위로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제 제가 올린 "홈메이드 짬뽕의 2% 부족한 맛"을 "반가워 단숨에" 읽으셨다는 화이팅님의 댓글을 보고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글쓰기에 대해 깊이 고민하시는 분들의 글을 브런치에서 읽으며 '나는 일기장에 써놓고 나 혼자 봐야 하는 글을 부끄럼도 없이 이해받기를 바라며 뻔뻔스럽게 공개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참 피곤하게 산다"는 저의 글에 처음 달린 댓글을 생각합니다. 조롱하는 듯한 그 첫 댓글에 화들짝 놀라고 상처 받았던 저도 생각납니다. 그 댓글처럼 어쩌면 저는 아무 쓸모없는 일에 체력과 감정을 소비하며 참으로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면서 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를 공감해주시는 화이팅님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결이 같은 사람인가 봅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 밤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혹여 이 글이 화이팅님을 불쾌하게 하거나 언짢게 했다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즉시 내리겠습니다.


저는 오늘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보내주신 위로 덕분입니다.


편안한 밤 보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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