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대략 5년 전쯤, 하루를 살아간다기보다는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신점'을 보러 갔었다. 신년운세를 보러 간 적은 많았지만 신점이라는 것은 좀 낯설고 무서워서 꺼려하고 있었는데 이것만큼 용한 게 없다고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았던 것이다.
내가 생각한 무당은 마당 있는 넓은 한옥집에 한쪽에는 작두가 놓여있고, 신당에는 무서운 그림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미지였는데 막상 도착한 곳은 한 오피스텔 3층이었다. 일반 가정집 같이 꾸며진 공간에 연두색에 회색이 10방울 섞인 옷을 입고 계신 아저씨가 계셨다. 선한 인상에 얇은 테 안경을 쓰신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뭔 걱정이 그리도 많냐며 말문을 열어갔다. 정말로 나에 대한 것들이 보이셨던 것일까? 신년운세에는 이름, 생년월일 등을 말해야 하지만 이 분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나를 빤히 보고, 무언가 보인다는 듯이 술술 읊기 시작했다. 내 뒤로 할머니 조상신이 나를 아껴주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금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와는 결혼까지는 가지 못할 테니 가급적 빨리 헤어지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남자친구와 별다른 트러블이 없었기에 그저 웃고 넘어간 이야기였는데 실질적으로 그와는 이별하게 되었다. 그 말 외에 기억에 남는 건 5년 뒤, 내 인생이 지금보다는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하루도 긴데, 5년이라니. 그날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앞에 곧 5년이라는 숫자가 놓이게 되었다. 그 당시에 내가 5년 뒤 나의 삶이 달라진다면 어떤 식으로 어떻게, 그걸 자세히 말해줄 수 없다면 내가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는 어차피 가야 할 길을 굳이 외면하고 있지 않냐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어차피 돌고 돌아 그 길로 갈 건데, 왜 그걸 외면하고 있는 거야."
"제가 뭘.. 도대체 뭘요..?"
"글 써. 애먼 데서 헤매지 말고."
"글이요?"
글, 나에게는 애증 같은 존재였고 이미 가슴속에 묻어버린 존재였다. 그런 나에게 다시 돌고 돌아 성공하는 길이 그것뿐이라고, 하나의 거짓 없는 눈빛으로 말하셨다. 이 말이 나에게 트리거가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그 길로 가야만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차라리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나는 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내 무의식이 그날을 의식하고 자꾸만 그쪽으로 행동하려고 한 것일까. 결론적으로 나는 돌고 돌아 정말로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분이 정말 용한 사람이었을지, 용한 척하는 가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말했던 5년 뒤의 삶이 곧 코앞으로 다가왔다. 26년. 과연 나는 그의 말처럼 나의 운명이 통째로 바뀔 일이 벌어질 것일까? 그가 자신이 가짜임을 속이려고 훅하고 던진 5년 뒤의 미래를 내가 진짜라고 믿고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무엇이 되었든 나는 5년 뒤 잘 될 거라는 그 말을 붙잡고 지금을 살아왔다. 숨 막히게 몰입감을 가져오는 막장드라마의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삶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드라마를 보며,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들게 만들고 싶다고. 다음 화를 기다리고, 또 다음화를 기다리고 그렇게 3개월은 또 살아지고, 살다 보면 또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렇게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움직일 수 있는 흡입력 있는 글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소소한 나의 이야기들로 작은 위로를 주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가 말한 5년 후의 성공이 나를 어디에 데려다 놓을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지만, 이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넓어진 그릇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혹, 이것이 잘 못 들어선 길일지라도 어딘가에는 도착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