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필명에 대해 고민을 했다.
처음에는 내 본명을 숨기기 위해 이름과 가장 먼 단어들을 골랐다.
내가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이 나를 특정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름뒤에 숨어서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무나도 소심한 사람이고,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실천에 옮기는데 백만 년이 걸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불려 오던 이름과 멀어지고 싶었다.
과장을 더해 백만 년이라는 시간이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머리카락을 자를 시기가 와도
"미용실 가야겠다."
이 말을 1년 동안 친구들에게 하고 나서야.
겨우 갈 수 있었던 사람이다.
나에게 '실행력'이란 게 늘 그런 식이었다.
두 번째는 내가 과연 무엇을 좋아하는가 생각해 보았다.
나의 키워드는 굉장히 무해했다.
낭만, 청춘, 별, 꽃, 바람, 해파리...
세상을 바꾸는 말도 아니고, 거대한 울림을 주는 단어들도 아니었다.
너무 자주 쓰여서, 이제는 빛이 바랜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을 어떻게 다독여주었는지,
나만이 알고 있다.
함께 있어도 외롭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던 밤,
하늘에 별을 올려다 바라보던 밤.
그저 헤엄치지 않고, 의미 없이 흘러가고만 싶었던 밤.
산들바람에 살고 싶어진 밤.
그런 작고 무해한 것들이 나를 붙들었다.
나는 거대한 이야기를 견디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주 작은 아름다움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들 이름을 어떻게 짓는 것일까?
일본기업 파이롯트에서는 "이름은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첫 편지일지도 모른다."라는 광고문구를 사용했다.
이름에 담긴 의미.
그 의미에 내 모든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를 담아야 좋은 이름이 된단 말인가?
의미라는 단어에 초점이 맞춰진 순간부터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강인한 체력, 빛나는 돌, 불을 다스리는 자.
자연, 꿈, 환상을 통한 이름.
내가 인디언 부족도 아니고, 상징적인 이름이 뭐가 필요하단 말인가.
이렇게 해서는 오늘이 아니라 이름만 짓다가 일 년이란 시간이 흘러 버려서 또다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다.
점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졌다.
그냥 하면 되는데,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고생을 한단 말인가.
올해부터는 생각보다 실천을 앞세우려고 했는데.
그렇게 지어진 나의 이름은 고민한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소소하게 지어졌다...
뭐라도 하자는 나의 다짐을 담아서.
해내다. 해냈다. 해낼 것이다. 해낼 거야. 그런 일도 했다니.
바다를 좋아해서 바다 해.
햇살을 좋아해서 태양 해.
매일 조금씩 해내기 위해서.
이제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나의 이름은, 해다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