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는 내가 담겨있다.
평소에 신경쓰이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날이 있다.
나에겐 '방청소'가 그랬다.
어질러 놓은 것들은
나만의 방식으로 놓여진 물건들이었다.
옷장에 넣기에는 찝찝하고,
그렇다고 바닥에 두기엔 싫은 옷들.
집 근처에서 잠깐 입었던 옷들은 의자에,
긴 외출을 하고 온 옷들은 침대 밑 바구니에 들어갔다.
한 벌, 두 벌,
시간이 흐르자 옷들은 무덤을 만들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옷 무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차라리 빨아서 옷장에 넣을걸, 늘 뒤늦게 후회한다.
책상도 변해갔다.
가방에서 꺼낸 물건들을 오른편에 올려두고는
내일 치워야지
내일 치워야지
내일 치워야지
쌓이고 쌓인 물건들은 더는 둘 곳이 없어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나의 게으름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버릴 것과 남길것을 구별할 힘이 사라진 걸까?
전시회 티켓,
카페에서 챙겨온 물티슈 한 개.
어제 받은 화장품 영수증.
옷 택에 달린 옷 핀 하나.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물건들.
나는 왜, 그것들을 놓지 못했을까?
무너진 정리법에 몸 하나 겨우 뉘일 공간도 부족했다.
이 작은 방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내가 관짝에 같이 넣어갈 물건들도 아닌데,
그 당시엔 왜 그토록 소중하게 느껴졌을까.
방에 내가 담겨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 머릿속이 방을 만들어냈다.
내 취향, 내 상태.
그 모든 것이 방 안에 흘러나와 있었다.
비워야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처럼
용량이 가득차면 업데이트도, 작업도 느려지듯이
우리도 비워야
무언가를 다시 담을 수 있다.
방을 정리하고 비우는 것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다.
나를 다독여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무말 없이 나의 상태를 보여주는,
내면의 가장 큰 신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