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려면, 버려야 한다.

솎아내야 자란다.

by 해다니

나에게는 생명을 잡아먹는 손이 있었다.

작은 화분을 선물 받으면, 식물의 특성에 맞게 키워야 했지만,

무지에서 시작된 조건 없는 사랑이 오히려 그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 후로 15년 동안, 나는 아무것도 기르지 않았다.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그토록 싫어하던 식물을 키우기로 했다.

초보 식집사를 위한 씨앗 세트였다.


작은 흙구멍마다 씨앗을 세 개씩 넣었다.

3개의 구멍에는 루꼴라,

4개의 구멍에는 방울토마토,

나머지 3개의 구멍에는 바질을 심었다.


충분한 물과, 햇볕 속에서,

그들은 흙을 밀어내고 떡잎을 내밀기 시작했다.

4일 차, 새싹이 올라왔다.


작고 연약한 것들이 너무 소중했다.

매일 하루하루 그들의 성장을 들여다보았다.

속도가 붙자,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시작했다.


나의 성장도 저렇게 눈에 보이면 좋을 텐데.


나는 자라난 모든 생명들이 기특해

모두를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의 다짐에 말을 건넸다.

"솎아내지 않으면, 다 못 자라."


한 구멍에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뽑아내야 했다.

가장 예쁘고 건강한 새싹만 남겼다.


잠시 힘들어했을 뿐인데,

그들은 뽑혀 나왔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괜찮아질지도 모르는 존재들이었는데.


그 순간 문득,

나 역시 무언가를 계속 붙잡고만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욕심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친구들은 나를 '취미 부자'라고 불렀지만,

그중에 완성된 건 거의 없었다.


작년 겨울에 시작한 목도리 뜨기,

2회 차에서 멈춰버린 스페인어 학습지,

미뤄두고 있는 아이패드 속 캐릭터 만들기,

작은 비즈들로 만들겠다던 팔찌와 반지들...


그 외에도, 하다 만 것들이 나에겐 참 많았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시작하기는 쉬웠지만,

하나라도 끝내지 못한 것들이 내 마음 한편을 무겁게 만들었다.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

그때, 내가 하나만 끝까지 해냈다면

지금쯤 완성한 '나'를 마주할 수 있었을 텐데.


나에게도

조금은 단호한,

조금은 냉정한 선택이

필요할 때인지도 모른다.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자라기 위해서.


한 가지만 제대로 키워낸 마음이,

나에게 더 큰 성장의 열매를 주었을지 모른다.


아니, 성장의 열매를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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