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의미가 없어진 물건들

쓰임의 자리

by 해다니

나는 맥시멀리스트였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내 방을 화개장터라고 불렀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비우기보다 채우기 바빴다.


채워 넣은 물건들은 거창지도 않았다.

작게는 1만 원에서 많아야 4만 원짜리.

필요보다는 갖고 싶었다.


살 때는 이유가 있었다.

'이건 나중에 친구들이랑 놀러 가면 써야지.'

'이건 나중에 여행 갈 때 필요할 거야.'

귀여워서, 예뻐서, 탐이 나서

그리고, 언젠간 쓸 것 같아서.


하지만 그 '나중'이 오지 않으면 나에게서 잊혀갔다.

캐캐묵은 먼지들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 없던 건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남은 추억도, 돈도 없으니

그건 결국 낭비였다.


한 번은 화장품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다.


누군가에겐 자식 같을 이 물건이

내겐 '애물단지'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다른 주인을 찾아줘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네가 만들어진 쓰임을 해보고 사라져야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과 거래를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신제품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오래된 가전기기를 판다는 글을 올렸다.


'팔리기나 하겠어?' 걱정과는 달리

하루도 안 되어 연락이 왔다.

띠링- "구매하고 싶습니다."


내 눈에는 낡아 보이는 그것이

그 사람 눈에는 보물처럼 반짝였던 것이다.


각자에게 쓰임은 분명 있다.


물건도, 사람도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그것을 알아보는 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를 뿐.


내게는 쓰임을 다하지 못했던 물건들.

결국엔 좋은 주인을 만나,

나와는 나누지 못했던 추억을 만들어갈 것이다.


쓰임의 자리


이 세상에 태어난 모두가 자기만의 쓰임이 있다.

그 순간이 조금 늦게 찾아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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