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실에서 울던 소녀는 이제 없다.
오늘 미용실에서 앞머리를 자르고 왔다.
중학교 이후로 처음 잘라보는 앞머리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내가 앞머리를 더이상 자르지 않게 된 것도 처음 자른 그 날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 앞머리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의 모교는 귀밑2센치 뒷머리를 고집하는 학교였다.
머리카락은 강력한 직모였고, 2센치로 잘려간 나의 모습은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친구들은 앞머리가 없어서 그런거라 말했고, 나는 집에서 머리를 손질한다는 친구의 말을 믿고
그녀에게 나의 앞머리를 맡겼다.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쳤다.
장소는 컴퓨터실이었다. 수업 후 청소까지 마무리를 해야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선생님이 없는 그 틈에, 미술시간에 사용하던 가위를 들고 친구는 나의 머리카락을 숭덩숭덩 잘랐다.
결과는 처참했다.
그자리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물론 내가 동의하에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예상밖의 결과물에 눈물을 흘렸고 그 사건은 아직도 친구들 입에서 회자되고있다.
그렇게 나는 그 후로 앞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그 날의 충격과 공포가 컸다.
그런 내가 의외로 앞머리를 다시 자른 이유는 간단했다.
미용사님께서 지금 앞머리를 자른다면 잘 어울릴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미용사는 나에게 말했다.
"그 때와 지금은 많은게 바뀌었어요."
그때의 통통하던 젖살은 흔적도 없이 성숙해진 나의 얼굴.
모질의 양은 스트레스받은 두피손상으로 중학생 시절보다는 적고 가늘어졌다.
화장법도 추구미도 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는 비 전문가였고, 지금은 숙련된 전문가의 손길이었다.
나는 성장해있었는데, 그 날의 충격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상황은 계속 달라지는데 나는 도전을 멈추고 있었다.
나는 도전해보겠냐는 그의 말에
단숨에 네! 라고 대답했다.
결과는... 반반이었다.
친구들은 "잘 어울린다."
엄마는 "약간 촌스러워진거 같아." 하며 웃었다.
그들의 의견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나는 색다르고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앞머리를 만들겠냐는 질문에는... 아니오.
벌써 귀찮다.
가끔은 구관이 명관이거 같기도하다.
하지만 내가 도전했던 순간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야, 내 앞에 다음 계단이 놓일 것 같았다.
나는 더이상 컴퓨터실에서 앞머리 하나에 울고있던 소녀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