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아빠가 전화로 말씀하시길, 딸이 그러는데 친구가 면접 1시간만 받고 어디에 합격했다고 자기도 한 번만 받으면 되니까 스피치 예약 해달라고 해서 전화하신 거라며...
이윽고 딸과 아빠가 왔고 딸을 바라보는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질문이나 답변에 대한 준비를 다 마친 상태에서 나에게 점검차 원포인트 코칭을 받으러 오나보다 생각했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 어색해서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치는 것까지는 넘어갔지만 겨우 들리는 말소리, 또 준비는
어느 정도 됐는지 말을 어느 정도 하는지 체크하려고 질문했다.
"좋아하는 게 뭐예요"
"왜 그 학교에 가려고 해요?"
"왜 그 과를 가려고 해요?"
"자기소개. 장점. 잘하는 거 말해봐요"
이 말에 한마디도 말을 못 하는 딸. 그러면서 꼬깃한 종이를 펼쳐 보이며 내미는 딸. 그곳에는 그야말로 예상 질문이라는 질문 10개가 적혀있었다.
"이것만 물어본대요" 이 말인즉슨 '이것만 물어본다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만 주시면 돼요'라는 뉘앙스다. 답을 적어준다면 면접관 눈을 보며 말을 할 수는 있고? 스피치 코치로서 가장 자존심 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소서라는 게 필요 없고 면접만으로 들어가는 학교라지만.. 아니 그러면 면접 준비를 미리 했어야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코칭 한 시간만 받으면 합격할 수 있다고 하는 건지 나는 이해불가였다. 이어지는 딸의 말은 나를 아연실색케 했다. "60명 뽑는데 100명이 지원했대요. 저보다 말 잘하는 애들이 많을 텐데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런 아이를 옆에 앉혀놓고 아빠는 밝은 얼굴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선생님만 믿습니다. 합격시켜주세요"
자신에 대한 생각정리가 안되어 있고 입을 열어 말하는 걸 주저하고 합격에 대한 바람은 있는데 노력도 하지 않고 밥을 떠 먹여 달라는 건데, 나는 온 성심을 다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가능할까.
수업 시작 30분이 지난 즈음 아빠와 딸에게 말했다. "도저히 이상태로는 시간만 가고 효율적이지 못하니 오늘 못한 시간까지 더해서 내일 다시 하시죠" 라 하고 돌려보냈다.
조건을 하나 붙었다. 그 10개 질문에 단 몇 글자라도 자기의 생각 적어오기. 제발.
누구의 도움이 없는 자기 생각. 욕이라도 좋으니 그 질문을 보고 들어온 생각을 적어오라 한 것이다.
딸이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주다면 나는 최선으로 코칭해 줄 것이다. 사람 마음 다 똑같지 않은가.
자기 생각이 없으면 말을 못 하고, 생각이 있어도 입을 열어 말을 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말한다는 것은 이제 기술이고 능력이다. 매장에 가도 말로 주문하려면 저기 가서 키오스크를 보고 하라 하니 점점 말을 할 기회는 줄어든다. 말은 자기를 표현하고 관계를 만든다.
이제는 스펙이 아니라 스피치다.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자기 생각 하나 제대로 담아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