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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통 스피치 Nov 24. 2022

말도 똑바로 못 하면서 뭘 바라나

능력이 안되면 노력이라도 하는 시늉

면접 코칭을 위해 여학생이 아빠와 왔다.

오전에 아빠가 전화로 말씀하시길,  딸이 그러는데 친구가 면접 1시간만 받고 어디에 합격했다고 자기도 한 번만 받으면 되니까 스피치 예약 해달라고 해서 전화하신 거라며...

이윽고 딸과 아빠가 왔고 딸을 바라보는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질문이나 답변에 대한 준비를 다 마친 상태에서 나에게 점검차 원포인트 코칭을 받으러 오나보다 생각했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 어색해서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치는 것까지는 넘어갔지만 겨우 들리는 말소리, 또 준비는

어느 정도 됐는지 말을 어느 정도 하는지 체크하려고 질문했다.

"좋아하는 게 뭐예요"

"왜 그 학교에 가려고 해요?"

"왜 그 과를 가려고 해요?" 

"자기소개. 장점. 잘하는 거 말해봐요"

이 말에 한마디도 말을 못 하는 딸. 그러면서 꼬깃한 종이를 펼쳐 보이며 내미는 딸. 그곳에는 그야말로 예상 질문이라는 질문 10개가 적혀있었다.

"이것만 물어본대요" 이 말인즉슨 '이것만 물어본다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만 주시면 돼요'라는 뉘앙스다. 답을 적어준다면 면접관 눈을 보며 말을 할 수는 있고? 스피치 코치로서 가장 자존심 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소서라는 게 필요 없고 면접만으로 들어가는 학교라지만.. 아니 그러면 면접 준비를 미리 했어야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코칭 한 시간만 받으면 합격할 수 있다고 하는 건지 나는 이해불가였다. 이어지는 딸의 말은 나를 아연실색케 했다.  "60명 뽑는데 100명이 지원했대요. 저보다 말 잘하는 애들이 많을 텐데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런 아이를 옆에 앉혀놓고 아빠는 밝은 얼굴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선생님만 믿습니다. 합격시켜주세요"

자신에 대한 생각정리가 안되어 있고 입을 열어 말하는 걸 주저하고 합격에 대한 바람은 있는데 노력도 하지 않고 밥을 떠 먹여 달라는 건데, 나는 온 성심을 다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가능할까.

수업 시작 30분이 지난 즈음 아빠와 딸에게 말했다. "도저히 이상태로는 시간만 가고 효율적이지 못하니 오늘 못한 시간까지 더해서 내일 다시 하시죠" 라 하고 돌려보냈다.

조건을 하나 붙었다. 그 10개 질문에 단 몇 글자라도 자기의 생각 적어오기. 제발.

누구의 도움이 없는 자기 생각. 욕이라도 좋으니 그 질문을 보고 들어온 생각을 적어오라 한 것이다.

딸이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주다면 나는 최선으로 코칭해 줄 것이다. 사람 마음 다 똑같지 않은가.


자기 생각이 없으면 말을 못 하고, 생각이 있어도 입을 열어 말을 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말한다는 것은 이제 기술이고 능력이다. 매장에 가도 말로 주문하려면 저기 가서 키오스크를 보고 하라 하니 점점 말을 할 기회는 줄어든다. 말은 자기를 표현하고 관계를 만든다.

이제는 스펙이 아니라 스피치다.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자기 생각 하나 제대로 담아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양재규 스피치  양재규 원장

스피치 개인 코칭

사람 살리는 말하기 강연자

스피치 코칭/강연문의 010 9990 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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