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라는 가격표

백만 원짜리 위로

by 호랑

대형쇼핑몰 점포에서 일하던 그녀의 죽음에 대해 해당 쇼핑몰 책임자는 장례식을 찾아와 무엇에 대한 것인지 모를 사과와 함께 백만원가량의 조의금을 전해주었다. 그녀의 발인을 앞둔 밤이었다. 나의 가족들은 다소 늦게 찾아온 그들에게 일하던 직원이 죽었는데 남일처럼 있다가 왜 이제야 찾아온 것이냐고 몰아붙였다. 그러자 '늦게 와서 미안하다' '명복을 빈다'라는 말이 아닌, 예상 못한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아니, 우리는 예상 못한 말이었지만 그들은 이틀 동안 준비했던 말이었을 것이다.


본 사건은 쇼핑몰 안에 배치된 점포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해당점포는 쇼핑몰 소유가 아닌 단기계약 점포일 뿐이며, 그녀를 죽인 남자는 다른 단기계약 점포의 직원이니 쇼핑몰 측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위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위로는커녕, 본인들의 쇼핑몰에 얼룩이라도 묻을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 같았다. 봉투 안에 있는 백만 원은 자신들이 계산한 책임이라는 가격표에서 알맞다고 산정한 금액인 모양이었다.


그들의 행보도 일맥상통하였다. 사람이 죽어 피가 낭자했던 쇼핑몰을 몇 시간 안에 깨끗이 정리했고 바로 다음날 오전에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운영했으니 말이다. 여기서는 아무 일이 없었다고, 그리고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열렬히 외치고 증명하고 싶어 하는 태도였다. 한낯 계약 점포의 비정규직 직원들에게서 일어난 일일뿐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쇼핑몰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원을 통합하여 교육하고, 보안팀을 보유하고도 사건당시에 발동하지 못했지만,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거듭 강조하였다.


도의적 책임도, 법적인 책임도 없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 이들의 목적을 알 수 없는 사과라니.


그들이 건네는 사과에는 그 어떤 무게도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 형식적인 위로와 사과는 우리를 위해서인지 본인들을 위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와 우리의 삶에서는 단돈 5만 원도 쉽게 생겨본 적이 없어 돈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분명 내게 백만 원이라는 건 굉장히 큰돈이었는데, 이토록 가벼이 느껴지는 순간은 처음이었다.


나는 해당 쇼핑몰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죽기 전 나눈 대화를 통해 단순 비정규직 직원끼리 생긴 개인적 문제라고 분절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상행동을 하는 가해자에 대해 주변 직원들은 알고 있었고, 막을 수 있는 상황도 있었으니까. 이분법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나서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고, 수많은 나비 효과의 가능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논의하고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진정한 위로와 사과는 그것뿐이었다. 백만 원짜리 봉투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벌써 8년의 시간이 흘러갔지만, 세상은 여전히 진짜 위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상실을 겪은 뒤 나는 오히려 위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감히 어떤 말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멋대로 내 상처의 무게를 누군가와 빗대는 것조차도 무례라는 생각에 나는 명복을 빈다는 말조차 하기 어렵다. 누군가 이별이라는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는 도망칠 궁리를 하는 현실이 아프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