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꾼의 슬픔

단 한 사람.

by 호랑

"웃네? 네 엄마가 그렇게 됐는데도."


귀순이 내게 물었다.

그녀가 떠난 뒤 귀순은 매일 술을 마신 뒤 내게 전화를 걸곤 했다. 나는 되도록이면 귀순의 전화를 받을 때 밝은 목소리로 받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평생 그렇지 못하게 살았지만 살가워지려고 아주 잠시 노력해보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귀순은 딸을 잃은 자신이 무너져버린 것처럼 엄마를 잃는 손녀가 무너지길 바랐던 것 같다.


"할머니는 내가 온종일 울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전화하는 거였나 봐요. 난 내가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그날 바로 살가운 손녀연기를 멈추었다. 나는 귀순에게 차가운 말을 쏘아붙이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동안 귀순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귀순도 더 이상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나는 유독 가족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듣곤 했다. 그녀와 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과 밝고 명량하게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듯 해 보이는 모습이 그 이유였다.


"너는 괜찮겠지만 우린 너무 슬퍼. 언니를 잃은 거잖아."

"넌 아무렇지 않겠지만 나는 힘들어서 그랬어."


다른 사람들 눈에 나는 과연 어떻게 보이는 걸까. 그들이 원하는 내 태도는 무엇이었을까.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했지만 혈연으로 묶인 그들은 내가 어떻게 살긴 바란 걸까? 나의 가족들은 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당시 경계성인격장애와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을 반복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충동적인 일을 일삼으며 몇 년을 보냈지만, 대게 사람들 앞에 보이는 모습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바로 그거였다. 우울이라는 건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대게 우울은 숨어있어 눈치채기 어렵다. 특히 나는 더욱 심한 편이었다. 사람마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익살꾼이 되는 게 특징이었다. 반복되는 감정 기복과 어려운 대인관계는 나아질 줄을 몰랐고, 무거운 이야기일수록 내가 겪은 상황이나 문제들을 희화화하곤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라는 존재를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람하고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


나는 진짜 웃음을 경계했고, 가짜웃음을 짓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런 웃음은 상대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귀순과의 통화처럼 상처받는 일이 많았지만, 바꾸고 싶다고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내게 새겨진 방어기제였으니까. 그렇게 나는 영원히 진심을 터놓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이런 나와 사랑하고 살아가던 희는 언제부터였는지 내 익살꾼 연기를 알아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밖에서 열심히 익살꾼 노릇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진이 빠진 상태였는데, 그가 말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에 알아봐 준건지 모르지만 그는 이미 나의 "애씀"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두가 내 마음을 몰라" 라는 포기감에 머물러 있던 생각이 "희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면 됐어."로 바뀌었다.


사랑의 의미는 그런 거 아닐까?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 주는 모든 변화 말이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에 너그러워지고,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가족들마저 이해하게 되는 것 말이다.

나는 이제 희와 아무것도 아닌 일에 배를 잡고 웃는다.

미래를 기대한다.

무의미한 것들에 의미를 붙이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