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하여 (2)
2022년, 위태롭게 우상향을 해가는 것 같던 나의 삶에 재난이 일어났다.
전세사기였다.
다행히도 보험을 들어놓아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는 있었지만, 이사갈 집에 냈던 계약금을 잃었다. 그리고, 이사 당일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당장 갈 집 역시도 없었다. 무책임하게 미안함이라곤 없는 목소리로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던 집주인은 반복되는 나의 전화에 결국 전화를 꺼버렸다. 악성 사기꾼으로 이미 알려져 있는 그를 나는 왜 몰랐을까 한심했다. 언제나 잡초에도 꽃이 피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건 몰라도 생계를 스스로 유지하는 데에는 이미 익숙한 나였건만, 가장 중요한 주거지 불명이라는 건 무서운 상실감을 가져왔다.
진행하던 이사를 멈추고, 인터넷 설치 기사는 돌려보내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을 처치해 가면서 상념에 빠졌다. 또 내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불이 너무 포근했던 게 화근이었던 걸까. 희와 너무 많이 웃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그녀에 대한 슬픔이 흐릿해져 갔던 게 화근이었을까. 나는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든 문제를 내 안에서 찾아냈다. 그러다, 옆에 있는 나의 고양이들과 희를 바라보다가 엉엉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거대한 포기감이 몰려왔다. 문제를 해결한 힘과 기력이 없어졌다. 어차피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인생을 살 텐데 무엇을 기대하며 자꾸만 생기를 찾으려 했던 걸까. 무엇 때문에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느냔 말이다. 어차피 나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세상 속에서.
그런 내 옆에서 희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분명 내게 힘을 주기 위해서 어떤 말을 전해주었지만 나는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에 내가 기억하는 건, 그가 했던 '위로의 말'이 아니라 긴장과 두려움으로 축축히 젖은 희의 손바닥과 울음을 참으며 붉어진 눈시울, 그리고 이곳저곳 전화를 하며 화를 내다 울컥했다가 하는 목소리였다.
내가 위로받았던 것은 바로 그거였다. 나의 불행에 일체화된 그의 모습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괴로워할 때 손을 잡으면 두 사람의 호흡과 심장박동이 같아진다. 두 사람의 몸이 비슷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그들의 뇌파도 같아지는데, 이를 '동조'현상이라고 한다.
- <다정함의 과학> 중에서 -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겪은 일에 함께 괴로워한다는 게 이토록 거대한 위로가 되리란 걸 몰랐다. 이렇게 감정과 감각이 일체화되는 경험은 나의 마지막 순간에도 희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왔다. 불안하고 위태롭다고만 생각했던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희를 위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희와 함께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삶의 터전을 되찾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불친절을 겪었다. 보험사, 은행원, 법원, 전세사기꾼, 부동산 직원 등의 모든 이들이 부정함과 무례함 등에 괴로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걸 겪은 날엔 언제나 희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함께 화내고, 울고, 싸우고, 논의하고 해결해 갔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도달했다. 나는 불확실하고 불연속적인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미미해졌다.
나는 이를 '다정함의 힘'이라고 하고 싶다.
1978년 ‘사이언스’에 특이한 토끼 실험 논문이 실렸다. 로버트 네렘 박사 연구팀은 토끼들에게 고지방 사료를 먹이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확인했다. 몇 달 후, 모든 토끼의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병 확률이 높아졌지만, 유독 한 무리의 토끼만 혈관에 쌓인 지방이 60%나 적었다. 변수를 확인한 결과, 건강한 토끼들은 한 다정한 연구원이 돌봤던 토끼들이었다. 그는 토끼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말을 걸고,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줬다. 병에 걸리는 토끼와 건강을 유지하는 토끼를 나누는 것은 식단이나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애정’이었다.
이를 '레빗 이펙트'라고 부른다.
'다정함'이란 오직 하나의 대상을 위한 섬세한 언어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체온을 느끼고, 관찰하고, 감정에 동조하고, 일체화되고, 그로 인해 우러나오는 모든 말과 행동. 그것은 단순 '친절함'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나를 위한 게 아니라, 결국 상대를 위해 나오는 것들이니까.
내가 사랑받고 있다. 누군가의 아낌을 받고 있다는 모든 감각은 사람에게 강력한 동력을 만들어내고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정함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