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녀가 살아있다면,
난 그녀가 떠나고 지난 7년간 그녀가 나오는 꿈을 꿔본 적이 없다.
어떨 때는 꿈에서라도 그녀를 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꿈속에서라도 나와 대화하거나 손 한 번 맞잡는 일이 없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무신론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 그녀를 수목장 하면서 그녀가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는 말을 빈말으로라도 한 적 없다. 그녀는 흙이 되었다. 삶은 허망하게 끝났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생명력이 스러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7년이 지났고, 희와 결혼을 두 달 정도 앞두었을 무렵 그녀가 꿈에 나왔다. 심지어 내 결혼식의 불청객으로 등장했다.
그날은 내가 희의 부모님들과 혼주석에 대한 말다툼을 한 날이었다. 희의 부모님은 내가 혼주석에 삼촌이나 이모를 앉히고 그들이 손님맞이를 하길 바랐고, 나는 싫다고 했다(당연하게도 희는 나의 편이었다). 애초에 내 논리체계에서는 혼주석이라는 자리는 당연히 비우는 것이었으니까. 나의 엄마는 죽었으며, 부친은 부모의 구실을 하지 않고 도망쳤다. 유일무이한 사랑이었던 그녀를 다른 누군가로 대체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에게 '부탁'이라는 걸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모 없음'이라는 상태는 극복하거나 부끄러워할 하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의 상황과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을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이모와 삼촌이 맞이하게 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결혼식은 내 뜻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 둘은 '보여주기 위한'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증명하는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편했다. 이토록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한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에 빠져있다가 새벽에 잠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꿈에 그녀가 나온 것이다.
쾅- 예식장 문이 공격적으로 열렸다. 갑작스러운 결혼식의 불청객으로 등장한 사람은 나의 엄마, 그녀였다. 그녀는 나와 희가 손을 잡고 입장한 버진로드 위를 흰 티와 청바지 차림으로 저벅저벅 걸어 다가왔다. 그러더니, 나와 희 앞에 멈춰 서서 대뜸 화를 냈다.
"왜 그랬어? 이모든 고모든 삼촌이든! 앉혔어야지! 아빠는? 아빠는 왜 안 불렀어? 아무리 연을 끊었어도 아빠는 아빠인데! 여기저기 미움받아서 뭐 할 건데? 사람들이 너에 대해 뭐라고 하겠어?"
"뭐라고 하는데?"
"부모도 없는 고아라고 하겠지!"
"맞는 데 뭘 아닌척해? 나도 엄마 있으면 앉혔겠지. 엄마가 삼촌이랑 앉고 싶다고 하면 그러라 했겠지. 억울하면 직접 오지 그랬어?"
"그 입을 확 찢어버릴라! 너는 어쩜 그렇게 너만 생각하냐?"
"나 아니면 누가 날 생각해? 그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 그런데 엄마 있어도 별 의지는 안 됐겠다. 그거 알아? 나 무신론자 된 거 엄마 때문이잖아. 떠다니면서 내 욕이나 하고 있을 까봐. 어떻게 죽어서도 내 편을 안 들어주냐? 왜 죽어서도 나랑 싸우려 하냐고!"
"너는 내가 죽었는데도 이기려 들잖아! 넌 네가 다 맞고 다른 사람들은 다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겉으로는 착한 척. 그거 이중적인 거야. 너 남편은 아니? 너 이러는 거?"
"다행히도 알아. 그리고 다행히도 엄마랑 다르던데."
"내가 이래서 너랑은 길게 말 섞기가 싫어!"
그녀는 그러더니, 내손을 꼭 잡고 있는 희를 노려보다가 다시 버진로드를 걸어 예식장을 나갔다. 참으로 그녀 다운 모습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저러는 건 아마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안 좋은 이야기를 할까 봐라는 걸 알기에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정작 내가 상처받는 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여전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땐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었다. 내 마음이 불편했던건 어쩌면 그녀와 싸우지 않고 그녀의 자리를 결정했기 때문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늘 그랬듯이 아, 이번에도 그녀의 말을 안 들어야겠다."라고.
그녀 생전에도 멋대로 살던 내가 그녀가 죽었다고 말을 듣는 건 그녀 입장에서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두 달 뒤 다가온 나의 결혼식은 자연스러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잘 끝났다. 나와 희는 우리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초대했으니 그 누구도 말로 우리의 마음을 베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식이 끝나자, 희의 부모님도 괜한 걱정을 했다는 걸 받아들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희와 나란히 손을 잡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7살과 20살 시절의 기억을 오고 가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를 대신해서 나의 가족들에게 과한 책임감을 가져 무언가를 했다가 후회하고 상처받고 죄책감을 느꼈다. 분명 그녀와 함께하지 않는데 그녀와 함께 있었고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데 지난 꿈에서 그녀와 침을 튀기며 말싸움을 하고 결혼식을 마무리한 뒤, 나는 비로소 독립했음을 느꼈다. 그녀가 떠난 지 7년 만이었다.
나는 이제야 그녀와 분리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