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할수록 불행을 예감하는 사람

불안에 대하여 (1)

by 호랑
따뜻한 이불이 포근하고 좋아서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뭐라고 설명할까.
- <최선의 삶> 중에서 -


그녀가 떠난 날, 나는 나의 자취방에서 친구와 함께 즐거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따뜻한 나의 방 침대에 친구와 마주 앉아 지금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대학교 내에 의미 없는 가십에 대해 얘기하던 참이었다. 당시 나는 그녀에게서 멀어진 상황에서 처음으로 자유와 편안을 느끼고 있었다. 같은 시각 그녀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원래라면 나는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몇 차례 그녀의 전화가 끊기고 얼마뒤에 온 전화에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고 받았다. 그는 구급대원이었고, 그녀의 핸드폰으로 내게 전화했다가 받지 않자, 자신의 전화로 내게 통화를 한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위급한 상태이고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오라는 말을 했다. 나는 무엇하나 제대로 이해한 내용이 없었지만, 무작정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가 살아있냐는 질문에그는 아직 살아있다는 답을 해주었다.


4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렸을까. 도착한 병원에서 마주한 건 눈을 감은 그녀였다. 의사는 내게 얼굴을 확인시켜 주었지만 충격을 받을 수 있어 자세히 보여줄 수는 없다고 했다. 찰나로 확인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멍하니 나의 엄마가 맞다고 대답했다. 별세하셨다는 의사의 말에 한참을 말없이 서있던 내가 처음 한 말은 "정말 죽은 거예요?"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실체는 여기 있는데 어째서 눈을 뜨고 나와 대화할 수 없다는 말인가.


어제도 나를 찾아왔던 그녀였다. 나의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넣고 나와의 화해를 기다리던 그녀였다. 오늘 아침에도 일을 했던 그녀였다. 군대에 있는 나의 오빠에게 전화를 했던 그녀였다. 이모들과 등산계획을 짰던 그녀였다. 이토록 생기 있게 삶을 살아가던 그녀가 어떻게 이리 허망하게, 혼자 외로이 타자들에게 둘러싸여 떠난다는 말인가. 누가 멋대로 그녀의 삶의 끝을 정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어쩜 난, 그녀가 발버둥 치고 있을 때, 살고 싶다고 되뇌고 있을 때,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편안을 느끼고 있었단 말인가. 그날부로 나는 본 적도 없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녀의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아팠을지, 두려웠을지, 그리웠을지, 외로웠을지, 살고 싶었을지, 모든 감정과 감각들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편안을 경계하는 습관이 생겼다.


좋은 일이 생겼다. 곧 안 좋은 일이 찾아오겠네.


그녀가 떠난 뒤 이런 식으로 불행을 미리 예감하고 준비하는 것은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는 최대한 덜 상처받기 위해서 하는 생존을 근거로 한 방어기제였지만 사실 삶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행이라는 것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행을 기다리며 떠는 인생이란, 그저 우울을 당겨 쓰며 더 길게 우울해하는 사람이 될 뿐이다. 이를 알면서도 좋은 일이 생겼을 때마다 몰려오는 몸서리쳐지는 두려움을 막을 수 없었다. 이는 내가 갑자기 찾아올 불행에 대해서 극복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가 시간이 흘러 편안을 경계하지 않게 된 계기는 희와 함께 막을 수 없었던 불행을 두발로 디뎌본 경험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