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멋대로 세 가지를 꼽아보자면 웃음, 사랑, 여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과 도무지 거리를 좁히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행복이라는 상태 자체가 상실을 겪은 사람들과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
난 몇 년간 내가 불행해야 만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웃음과 사랑, 여유를 멀리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다들 본 적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라던가, <사건 수첩>과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불의의 사고를 겪은 유가족들이 1인 시위를 한다던가, 사건과 관련된 모든 기사를 스크랩하여 기자들을 만나고, 가해자와 민사재판을 몇 년 동안 하는 등의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노력들 말이다.
그녀의 사건이 처음 방송으로 알려졌을 때, 언론사들의 깊이 없는 취재로 살해당한 그녀를 '죽을만한 여자'로 만들었다. 장례를 치르는 와중에 모든 방송을 통해 나오는 전혀 다른 진실과 아나운서들의 무거운 척하는 가벼운 말하기에 몸서리쳤다. 나는 장례가 끝나고 바스러져버린 그녀의 명예를 위해 그녀가 일하던 쇼핑몰을 돌면서 해명 종이를 뿌리기도 했고,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내게 요구하거나, 기자를 만나 다른 뉴스를 내보낼 수 있도록 했으며, SNS에는 장문에 글을 올려 직접 전말에 대해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법적 지식이라고는 전무한 20살이었다.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절차가 필요했는데, 절차를 위해서는 신체적 정신적 노력이 필요했으며, 그 과정에서 겪는 불친절이나 무심함 한 번에 쉽게 무너져버리고 마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게다가 나는 나를 내버릴 수 없었다. 내 대학도, 생계도 완전히 놔버리지 못해 문제 해결에 온전히 몰입하지도 못했고, 어쩔 땐 꿈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녀를 잃은 슬픔보다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다. 결국 나는 지치고 말았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던 걸까. 어떻게 나는 이렇게 나밖에 모르고 이기적인 걸까. 나는 왜 이리 겁이 많은 걸까. 나는 긴 시간 나를 미워하다 안쓰러워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 돌연 지지부진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언론사의 정정보도 조정을 포기했다. 조정위원회에도 불참했으며, 후속기사를 위한 추가적인 자료를 구하다 포기했고, SNS는 탈퇴했다. 이 모든 과정은 1년 안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속 유가족처럼 10년 동안 자료를 모으며 싸우지도 않았고, 모든 재판에 참여하지도 못했으며, 복수의 칼을 갈지도 못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나를 내버리면서 싸우지 못했다. 나는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도망쳤다. 그러면서 뻔뻔하게도 아직까지 살아있다. 운이 좋게 살아남았을 뿐이면서, 누구든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겪은 일이면서 끝까지 싸우지 못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돌덩이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쪽으로 밀어도 움직이지 않는 돌멩이에 밀려지는 건 오히려 나일뿐이었다.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나는 그냥 그 돌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척 반대방향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그 돌은 너무나도 커서, 내게 오는 햇빛을 막고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돌멩이가 만든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걸었다.
그렇게 돌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면서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으며,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불행했다. 그러다 너무 행복해질 때면 다시 뒤를 돌아 돌을 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림자의 끄트머리에 도착했는데 이제 돌멩이의 그림자에서 나갈 수 있었지만 나가지 않았다. 나는 이 그늘에서 살아가기로 했다. 영원히. 이 그늘 밑에서 행복해지면 불행을 예감하고, 불행해지면 행복을 예감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게 바로 치열하게 싸우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상실을 겪은 모든 이들의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돌멩이를 부수려다 손이 다치지는 것도, 밀다가 이내 밀려나는 것도,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도, 망가지는 것도 전부 당신의 최선이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 당신이 그늘 아래에서 울고 웃고 행복하고 불행하며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