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난제

눈물의 저주

by 호랑

사랑이 난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랑을 주장하는 사람마다의 논리가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받아본 사랑과 해본 사랑의 형태도 방식도 다른데 다들 '사랑'이라고 표현하니, 이것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그랬다.

분명 내가 먼저 누군가를 좋아했으면서 상대가 나를 향해 호감을 드러내면 도망치곤 했고, 불타오르던 마음도 사라졌다. 어쩌다 연애라도 하게 되면,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수십수만 가지의 단점을 찾아내고 미워하게 되었다. 멀다고 느껴질수록 내 마음을 터놓고 공허한 애정을 던지기 쉬웠으며, 가깝다고 느껴질수록 날 선 마음과 말로 상대를 공격했다. 또한,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었고 상대의 불안한 태도를 통해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 게 맞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나조차 판단하기 어려웠다.


희와 사랑을 시작한 이후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희는 여러모로 나와는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세심하고 다정했고, 헌신적이었으며, 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법이란 없는 앞과 뒤, 그리고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었다. 희는 멋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포장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었고, 복잡하게 엉켜있는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렇게 어렵지 않게 전달받을 수 있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나에게 그가 반대되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희에게 나도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고해성사해 보자면, 나는 그를 참으로 많이 울렸다. 이토록 올곧게 사랑해 주는 그에게 나는 복잡한 폭탄을 몇 번이고 던졌다. 나는 몇 번이고 그에게 "이래도 나를 사랑할 수 있어?"라는 시험의 메시지를 던지며 일부러 상처를 주고, 그가 정말 나를 떠날까 두려워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런 시간을 반복하던 어느 날, 그가 어린아이처럼 숨을 헐떡이며 눈물을 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에 마음이 쿵-하고 떨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5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녀는 낮에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부업으로 넥타이를 꿰는 일을 새벽까지 하며 우리를 키웠다. 나의 부친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집에 들어오곤 했는데 그마저도 술에 취해 와서는 화분을 깨던가 애꿎은 넥타이를 밖에 버리는 행패를 부리곤 했다. 그러면 나는 쓰레기장에서 넥타이를 몇 번이고 품에 안고 다시 집에 들어오고 작은 주먹으로 부친을 때리고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지키곤 했다. 그날도 부친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집을 다시 나간 뒤 그녀가 넥타이를 꿰기 시작했는데 떨리는 손 때문인지 바늘이 그녀의 손가락을 찔러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친과의 실랑이에도 눈물 한번 흘리지 않던 그녀가 손끝에 고이는 피에 엉엉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아픈 게, 눈물 흘리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며 사랑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나는 그날 그녀의 눈물에 고통을 느꼈었다.


시간이 흘러 19살에서 20살의 갈래에 서있던 어느 날, 그녀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와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쇼핑도, 찜질방도, 카페도, 등산도, 여행도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난 모든 걸 거절하고 거부했으며 그녀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집까지 구한 상태였다. 남들은 엄마와 이렇게 잘 다니는데 너는 어쩜 그러냐고 토해내는 그녀에게 나는 말했다. "그 여자애는 나처럼 안 살았겠지." 이에 원래였다면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화를 내야 했던 그녀가 눈물을 흘리더니,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의 눈물에 알 수 없는 승리감과 편안을 느꼈다. 나는 어쩌면 이날의 저주에 걸려 사랑에 실패해 왔던 게 아닐까?


나도 분명 어린시절에 제대로 된 사랑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어쩌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에 편안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순수하게 그녀가 울지 않기를, 나를 버리지 않기를,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순간들과 현재의 나. 그리고 나의 희가 눈물 흘리는 모습이 몇 번이고 교차되고 반복되었다.


나는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나는 그가 울지 않기를, 슬프지 않기를 바랐다. 아주아주 어린 시절의 내가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처럼 말이다. 그제야 나는 눈물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어졌다. 물론 곧바로 변화했다면 거짓이지만 더 이상 상대를 아프게 하고서야 안정을 느끼진 않아 졌다. 여전히 나는 복잡하게 꼬여있는 사람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희로 인해 무언가 변화하고 있음을 안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드라이기 선이 꼬여있는 거 알고 있었어? 계속 꼬여있어서 내가 풀어줬어. 불편했을 텐데 계속 쓰더라?"


하지만 그날 이후로도 드라이기 선은 계속 꼬였고 그는 덤덤하게 다시 선을 풀어주며 말했다.


"또 꼬아놨네. 괜찮아. 내가 매일매일 풀어주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