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를 급하게 건너던 수녀님의 가방에서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툭 떨어진다. 그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저 스쳐 지나가던 무명의 수녀님에게 의미가 생긴다. 궁금증이 피어난다.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모습을 발견할 때 애정을 느낀다. 내 마음대로 가둬두었던 한 사람이 그 가상의 틀을 깨부수고 나와 무한히 커져가는 재미를 발견한다. 나의 고정관념을 깨버린 그대가 고마워진다.
갭이라고 하는 그거.
냉정하던 사람이 따스한 한마디를 건네줄 때,
소심하던 사람이 뜨거운 일탈을 보여줄 때,
조용하던 사람이 못 말리는 끼를 발산할 때,
기대치가 없던 어느 구석을 발견할 때의 감동.
물론 기대했던 이의 의외의 배신도 무수히 존재하겠지만...
그러고 보면 기대도 실망도 결국 내 멋대로 규정한 당신의 모습이니 결국 첫인상도 반전도 지나치게 내 멋대로의 해석일 뿐이려나.
당신은 본래 다층적으로 그렇게 존재했을 뿐인데
섣부른 내가 평면적으로 해석하고서는 혼자 놀라기도 실망하기도 해 버렸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나에게는 너무 기대하지도 쉽게 실망하지도 말아줘.
우리 그렇게 좀 더 담담하게 서로의 존재가 머물 곳을 넉넉히 남겨 두고 지켜봐 주기로 해. 그러다 보면 의외의 기대치 않았던 유대가 우리를 채울 수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