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 프로젝트_24. 주름 by희진

by 김희진

얼마 전부터 체감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이제 내가 살아온 행적이 몸의 증상과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바라볼 때 찌푸리던 습관은 미간의 주름으로, 조금이라도 작아 보이고 싶던 욕망은 굽은 등으로, 키보드에 앉아서 일하는 시간은 시린 손목으로, 큰 의미 없이 쌓아 온 하루하루의 생각과 행동이 몸의 자국으로 표시가 나기 시작했다.

중년이 지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나는 어떤 얼굴로 나이 먹고 있을까? 누군가의 얼굴을 평가하는 일은 매일인데, 정작 내 얼굴을 판단하는 일에는 나태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표독스럽게 변해버린 한 정치인의 얼굴을 보며 '역시 인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라는 개인적인 선입견을 공고히 다져보기도 했는데, 내 얼굴에서 문득 비치는 뚱한 감정을 발견할 때마다 흠칫 놀라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나만 빼고 벌어지는 일은 없으니까.

어릴 적에 안성기 배우를 보며 나이 들어 저런 멋진 주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구나 생각했는데, 입가의 저 인자함을 얻으려면 지금부터 나는 훨씬 자주, 아주 많이 웃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 허투로 생기는 주름은 없을테니까.

사실 '동안'이란 단어를 종종 섬뜩하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강박 같아 보이니까. 나이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그의 나이가 그대로 들여다 보인다. 이상하게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은 가장 먼저 드러나니까. 세계는 언제나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은 그 하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나이에 대해 좀 더 유쾌해졌으면 좋겠다. 고유 명사가 잘 생각나지 않게 된 변화와 꽃 사진을 좋아하게 된 흐름에 대해 조롱 없는 농담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우스갯 거리가 아닌 세계의 확장으로 나이 듦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우리가 나이의 품위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근사한 주름이 생기면 좋겠다. 삶의 품격을 유지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그런.

나이를 거스르는 관리가 아니라, 나이를 인정하는 명상이 필요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