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의 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다. 커다란 캔버스에 구역을 나누어 색을 칠한 형태의 그림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색이 예쁘네"
처음엔 그저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점점 걸음이 느려지며 그림 앞에 한참을 멍하니 선 자신을 발견했다. 아주 단순한 형식의 그림이 어쩐지 깊고 오랜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기분이 든 건 왜였을까?
어떤 그림 앞에 서는 하마터면 울 뻔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감정이 울컥하고 피어올랐다. 그건 이전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신기한 일이었다. 그림이 내 안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듯했다.
아는 색 같기도 했지만 알고 있던 단어로 정확히 지칭할 수 없는 색들. 미묘한 색감이 한없이 슬프기도, 불현듯 비극적이기도 했다.
화가는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여러 번의 덧칠을 했다고 한다. 물감 이외에도 계란이나 오일 같은 재료들도 활용하며 층층이 색을 쌓아 올렸다고 하는데, 그 수고와 마음이 평면의 캔버스에서 깊이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치 그 안을 헤아릴 수 없는 물가에 서서 표면에 비치는 나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 겹씩 쌓인 색은 사라지지 않고 은은한 존재감을 발현했다. 세상에 숨길 수 있는 색은 없었다. 아주 깊은 아래, 여러 겹의 맨 뒤에 자리하더라도 한번 덧발라진 색은 어떻게든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겹겹이 쌓인 나의 밑 색. 나는 어떤 색들을 쌓아 올렸을까? 어느 색은 애써 가리고 싶기도, 어떤 색은 조바심 내며 드러내고 싶기도 했는데, 어느 것도 그저 한 가지로 드러나진 않았다.
색은 어느 하나로 정해지거나 바뀌는 법이 없었다. 그저 계속 더해지고 섞여, 나란 색을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