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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Mar 19. 2019

섬에서 보낸 11일(5)

다카마쓰 입성기  


어제 묵었던 칸 게스트하우스의 친절한 주인아저씨가 근처의 역까지 차를 태워 데려다주셨다. 여행지에서 기꺼이 친절을 베푸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팍팍함을 비춰보며 반성하게 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건물 입구에 유리문을 열 때, 뒤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걸어오다가 내가 문을 잡고 선 사이 슬쩍 들어오는 이를 얄미워한 적이 많다. 그런 무임승차에 괜스레 화가 올라와서 일부러 문을 빨리 놓아버린 적도 많다. 타인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그 몇 초의 친절함조차 쉬이 바닥나 버리는 탓이다. 딱 그 5초 의 따스함이 나에게 있었다면,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소도시의 작은 역, 종이로 된 표를 역무원에게 보여주니 역무실에서 나와 계단으로 건너 반대편 플랫폼에서 오는 기차를 타야 한다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 사람의 다정함에 마음이 녹아든다.

오가는 이라고는 나와 친구뿐인 카모지마역에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비춘다.


누군가 곱게 뜨개질한 방석이 의자마다 놓여있다.

이렇게 세 번째.

이토록 귀여운 마음이라니, 한 올 한 올 곱게 짜인 다정함만으로 이 역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도쿠시마에 도착해 3일간 캐비닛에 넣어 두었던 캐리어를 꺼내고, 다카마쓰행 기차를 기다린다.

역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발견한 가챠샵. 이후로 이 정도 규모의 가챠샵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때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건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 가챠샵이 계속 아른거렸다.

쓸데없는 것을 알면서도 가지고 싶은 것들.

그래, 갖고 싶은 것들에는 대개 쓸데가 없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찾은 블루 하우스

이제 남은 일정은 이 숙소에서 계속 묵을 예정이다.

더 이상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

고민 없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방 한 칸으로 이루어진 숙소.

커튼 사이로 새어 들다가 부끄러운 듯 멈칫하는 빛이 보인다.  모든 사소함들이 설레게 다가온다.


오늘은 숙소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로만 다카마쓰를 둘러보기로 한다. 이 곳도 일본의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혹은 내가 사는 서울에 비하면 그다지 번화했다고 할 수는 없는 소도시인데, 며칠간 사람도 건물도 없던 곳에 있다 오니 낯설 정도로 번화하게 느껴진다.


인간의 적응력이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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