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 프로젝트_6. 빗자루 by희진

by 김희진

중학교 시절에 토요일인가 일요일 저녁마다 9번에서 하던 <미녀 마법사 사브리나>라는 미국 드라마를 좋아했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사브리나가 알고 보면 한창 마법을 익혀가는 초보 마녀라는 설정에, 베테랑 마녀 이모 두 명과 말하는 고양이와 함께 살며 벌어지는 우당탕탕 시끌벅적 뭐 그런 이야기였다. 최근까지도 인터넷에서 가끔 찾아보곤 하는데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저화질의 시즌 1,2이거나(드라마는 시즌7까지 제작되었다) 무자막 버전뿐이라, 내가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 거의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건 사브리나를 다시 보고 싶어서이다.

마법이나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언니와 발매일을 기다리며 서점에 달려갈 정도로 일명 플시 시리즈라는 소녀 명랑소설을 좋아했는데, 초등학생인 플시가 언니의 밍크코트를 입으면 갑자기 성인으로 변신해 이런저런 어른의 세계를 경험하는 이야기였다. 쌍둥이가 손가락을 걸고 마법 주문을 외우면 공간이동을 한다는 설정의 애니메이션 <요술 소녀>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메이징 스토리>, 넷플릭스 거 말고 일드 <기묘한 이야기>, 뭐 그런 마법이거나 혹은 마법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사랑한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사브리나>가 리부트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첫 회를 다 보기도 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건 내가 바라는 마법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둡고 무섭고 음침한 건 내가 기대하는 마법의 형태가 아니다. 내가 보고 싶은 마법은 밝고 유쾌하고 아기자기한 어떤 모습이다. 교훈을 줄 필요도 없고 진지해질 이유도 없다. 그저 우리끼리 그렇다 치고 시작하는 이야기의 순진한 믿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마법을 좋아하는 이유 중 팔 할이 현실적이지 않은 데에 있으니까. 그 이야기가 현실적인 어둠을 연상하게 하지 않았음 싶다.

사브리나가 그러했듯이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의 불행이라는 것은 가끔 몸이 엄지 공주만 해지거나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남자 친구가 사고를 친다거나 말할 때마다 입에서 개구리가 나오는 저주에 걸리거나 뭐 그런 것들인데, 어떤 불행도 드라마가 한 회가 끝날 30분 후즘에는 당연히 해결될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으니 불안하거나 긴장할 일이 없다. 마치 디즈니 영화처럼 모든 불행은 그저 행복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니 애초에 마법 세계에 불행한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도 작은 해프닝에 불과한 그런 세계, 그걸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마법은 그냥 잠깐의 여행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벗어나 있기에 매혹적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약속이 전제된. 그렇다고 원하는 건 매일의 마법이 아니다. 마법이 매일이 되면 그건 다시 일상이 되어버리니까. 마치 온통 흰색만 있다면 흰색이 존재를 드러낼 수 없듯이, 마법의 하루가 특별해지려면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날들의 연속이 필요하다. 모든 존재는 상대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되니까.

그래서 마법을 믿되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현실적이지 않은 것을 꿈꾸면서도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혹은 언젠가 불쑥 요정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밤, 마법의 빗자루에 안정되게 올라탈 수 있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