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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마음 Aug 30. 2020

생몰

(2014. 어느 날 ~ 2020.08.28)

우리 집에는 반려견이 두 마리 있다.

아니, 있었다.


둘 다 원주인에게 파양 되어서 이집저집 옮겨 다니다 결국 우리와 연이 닿은 아이들이다. 

한 마리는 골든 리트리버, 다른 한 마리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 둘의 이름은 원주인이 지어준 이름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불린 이름을 보호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마음대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하여 혹여나 원주인이나 그 지인들과 얽히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들의 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다.)



 

골든 리트리버는 원주인이 아파트에서 키우다 활동량이 많은 리트리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파양 하였다. 활동량이 워낙 많은 견종인 데다 이 아이는 유독 장난이 심했다. 특히나 성견이 되기 전까지 리트리버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활동량과 호기심을 자랑한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입질을 한다. 원래 모든 견종이 강아지 때는 입질이 많기도 하지만 리트리버는 더 하다. (우리 집 래브라도는 이갈이를 할 때 호기심에 집 외벽을 물어뜯어 여기저기 구멍을 냈다. 족히 10cm는 파낸 것 같다. 정말 강철 이빨을 가진 녀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접한 리트리버의 모습에 마냥 아름답고 순하고 차분할 것이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리트리버는 그리 차분한 견종이 아니다. 태생이 수렵견이니 그들의 본성을 잘 알고 키워야 한다. 


원주인에게 파양 된 뒤 옮겨간 집에서는 장난기 때문에 또 파양 되었다. 장난이 너무 심해 도저히 훈련이 안된다는 이유였다. 원주인은 골댕이를 여기저기 맡겨 보았으나 결국 집집마다 파양이었다. 골든 리트리버의 꼬물꼬물 인절미 모습에 홀딱 반해 덜컥 데려오지만 리트리버에 대한 공부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같은 견종이라도 개마다 성격이 다 제각각인데 이에 대한 이해와 인지가 부족하여 골댕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골댕이는 처치곤란 문제견이었다.




골댕이의 원주인은 나의 동반자가 시골에 살고, 집이 주택이고, 마당이 있다는 이유로 골댕이의 임보처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3개월 후에 꼭 데려가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해보겠다고. 

정말 데려갈 마음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3개월이 지나도 연락이 없던 원주인은 어느 날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이곳에 있는 골댕이가 행복한 것 같다며 잘 키워달라고 했단다.


그렇게 골댕이는 나의 동반자와 진짜 가족이 되었다.




골댕이는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다.

어린 시절의 잦은 파양은 골댕이에게 집착이라는 성격을 만들어주었다.

눈치는 있었으나 고집이 꽤 센 편이었고, 소심하고, 질투심이 강하고, 새나 쥐를 사냥하고, 여기저기 땅을 팠으며 종국엔 울타리 밑으로 땅을 파서 집 밖을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울타리 밖에서 집으로 다시 들어오지 못해서 낑낑거리며 울곤 했다. (나간 구멍으로 다시 들어오면 되는데 왜 못 들어오는 걸까? 미스터리다. 여튼 가출해서 낯선 사람 따라가지 않은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골댕이는 처음 보는 사람을 제.일. 좋아했다. 골든 리트리버답다.) 그리고 고양이나 쥐가 나타나면 거기에 꽂혀서 몇 시간이고 쉼 없이 짖었다. 


다행히 이런저런 문제들은 훈련을 통해 고쳐나갈 수 있었다. 

골댕이의 본성과 성격을 통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노력의 양에 따라 변화되어갔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천둥 번개였다. 

2, 3년 전부터 천둥 번개가 치는 날이면 숨이 넘어갈 듯 끝도 없이 짖었다. 인터넷과 책에서 효과가 있다고 알려주는 온갖 방법을 모조리 시도해 보았으나 어느 하나 골댕이에게 통하는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안정감을 준다는 입마개도, 목줄도, 진정 효과가 있다는 스프레이도, 숨을 장소를 마련해줘도 골댕이는 죽겠다는 듯 짖었다. 

골댕이는 목이 쉬도록 몇 시간을 짖어댔다.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밤에 치는 천둥 번개에만 반응하던 녀석이 올해부터는 낮에 치는 천둥 번개에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인적 드문 시골이라지만 조용한 밤늦은 시각에 몇 시간이고 짖어대면 그 소리가 이웃집에 안 들릴 리 없다. 참다못한 이웃집의 항의에 우리는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렸다. 


번개는 마른하늘에도 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우중충하거나 구름이 몰려오는 날이면 우리는 항상 긴장 모드였다. 

특히나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날씨가 시시각각 변하는지라 둘이서 잠깐 장을 볼 때 말고는 사람이 집을 비우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밤사이 천둥 번개가 치지 않길 기도하며 잠들었다. 




요 며칠째 계속된 비와 천둥번개에 우리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골댕이가 짖을 때마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결국 그저께 사달이 났다. 피곤에 지쳐 잠든 사이 천둥 번개가 꽤 크게 쳤다. 잠결에 천둥소리는 들었으나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길래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아마도 그때였나 보다... 


이상한 불길함. 

자다가 문득 골댕이가 걱정되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더니 골댕이는 평소 눕던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다. 

정말 이상한 불길함... 배를 쳐다보는데 움직이질 않는다. 골댕이의 몸은 이미 굳어 있었다. 

밤 사이 아무 소리도 안 났던 걸 이상하게 여겼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다... 

극도의 공포심에 심장마비가 온 걸까... 골댕이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처음 집에 왔을 땐 천둥 번개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이가 왜 갑자기 2, 3년 전부터 짖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래돌이가 온 이후부터 짖기 시작한 건지... 그 시작이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래돌이에게 관심을 뺏겼다고 생각해서 질투심에 시작한 건지, 처음부터 천둥 번개를 무서워했는데 우리가 몰랐던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가뜩이나 소심한 아이가 겁이 더 많아진 건지... 알 도리가 없다... 


그저 한없이 미안하고 마음이 무겁다. 

나름 넷이서 서로를 의지하며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골댕이에게 나는 턱없이 부족한 보호자였다. 

자격미달이다. 

결국 골댕이에게 좋은 가족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짓누른다. 허망하다.




나의 동반자는 나를 비롯하여 골댕이와 래돌이 모두를 지금의 우리 집에 받아들여줬다.

세상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떠돌이 신세로 전락할 뻔 한 우리 셋 모두를 품어주었다. 

처음에는 골댕이, 그다음에는 나, 마지막으로 래돌이. 


남들보다 많은 이별의 경험이 쌓여가는 나의 동반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너진다. 골댕이를 떠나보낸 슬픔도 크지만 이런 아픈 이별을 또 경험하게 되는 그가 너무 가엽다. 더 이상의 가슴 아픈 이별이 그에게 없길 바라지만 우리는 언젠가 래돌이도 떠나보내게 될 것이다...




골댕이는 우리 집 마당에 묻혔다. 골댕이를 묻을 땐 쨍쨍하던 하늘이 곧이어 또 번개를 내리꽂기 시작했다. 비바람과 번개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또 울컥한다. 살아있었으면 또 고통받았겠구나...


오늘도 천둥 번개가 친다. 벌벌 떨며 짖고 고통받던 골댕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길... 

그리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그의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 나누길...


우리 집 고집불통 못난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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