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지금 공보의/군의관 하시는 전문의 한 분을 짝사랑하는 처자랍니다. 저도 비슷한 나이대의 전문직 여성(뭐 액면가는 그분보단 동생일 수도 ㅎㅎ)
진짜 연예인 좋아하듯이 그분께 빠졌는데, 지금 제 모습이 십 대 소녀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어디 좀 미친 것 같아요. 그분은 제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실 텐데. 그리고 다른 군의관/공보의 샘들처럼 지금 그분이 여자 친구 있으실 가능성도 높을 것 같고요. ㅠ.ㅠ 왜 하필 이제야 제 눈에 보인 건지 울고 싶습니다.
친구들이 그분은 나름 훈훈하시지만 객관적인 미남은 아니라고, 다들 제 눈에 맛이 갔다고 하네요. 그래도 제 눈엔 그분이 최고의 훈남이시랍니다ㅜㅜ
정신 차리고 가서 일하라고 따끔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흑.
답변
결론부터 말하면 '용자(勇者)만이 미인(美人)을 얻는다.'입니다. 남자만이 용자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고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화론적으로는 남자가 아닌 여자가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그분한테 여자 친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거지 실제 여자 친구가 있는 게 확인된 것도 아니잖아요? 친구들이 객관적인 미남이 아니라고 말한다는데 객관적인 미남이 사랑의 조건은 아니잖아요? '제 눈에 안경'이라고 자기 눈에 잘 생겨 보이면 그만입니다. 원래 사랑이란 건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합니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不狂不及)처럼 그것도 관계 연결에 필요합니다. '정신 차리고 가서 일해라.'라고 말하고 싶지 않고 '정신 차리고 가서 만나봐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분이 공보의인지 군의관 인지도 모르는 걸 보면 잘 아는 분이 아닌 걸로 보입니다. 겉보기와 달리 직접 만나서 대화해보고 사귀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용기 내서 부딪쳐 보기를 권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꽃이 시들어 죽으나 밟혀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밟혀 죽을까 봐 겁나서 시들어 죽겠다는 건데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도 못 합니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게 용기입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자신 안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얻을 수 있습니다. 덧붙여, 사람을 좋아하는 건 죄도 아니고 비난받을 일도 아닙니다. 설사 상대가 본인을 좋아하지 않고 거절한다 해도요. '사랑'이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고 그 건 그 마음을 품은 사람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고 쟁취하는 것입니다. 가서 사랑한다고 고백하세요. 그 사람을 사랑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꽃은 들판에 홀로 피어있기보다 누군가에게 사랑의 표현으로 선물할 때 더 가치가 있습니다.
김춘수의 시 '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